“전 말레이 곰에게 이런 말 해주고 싶어요. 자꾸 도망다니지 말레이”라는 최일구 주말 MBC <뉴스데스크> 앵커의 코멘트가 화제다. 최 앵커는 과거 <뉴스데스크>를 진행할 당시 ‘최일구 어록’이라는 독특한 코멘트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터라, 시청자와 누리꾼들은 말레이곰 코멘트에 대해 ‘최일구 어록이 하나 더 추가됐다’며 반색하고 나섰다.

지난 11월, ‘죽어가던 주말 뉴스를 살리겠다’며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시작했던 최 앵커의 당시 포부를 생각한다면, 말레이곰 어록으로 화제가 된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안을 바라보는 MBC 특유의 시선과 사안을 향한 기자들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사라진 지금 상황에서, 그저 ‘말레이곰’ 어록으로만 <뉴스데스크>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을 마냥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는 것 같다.

▲ 12월12일치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최 앵커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했을 당시 시청자들과 누리꾼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 앵커 특유의 코믹하고 재미있는 코멘트도 큰 몫을 했지만, 그 보다는 쏟아지는 현안과 사안에 대한 최 앵커만의 ‘날카로운 직설 화법’이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으리라 생각된다.

시청자들이 신경민 전 <뉴스데스크> 앵커의 클로징 코멘트에 ‘열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일각에서는 ‘앵커의 코멘트가 편파적’이라고 비난했지만,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의 한 마디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지금도 많다. 그의 날카로운 코멘트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들은, 지금도 신 전 앵커가 트위터에 남기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주목하고 있다. 현안에 대해 쏟아놓는 그의 트윗 하나 하나가 날카로운 클로징 코멘트에 목말라하는 누리꾼들에게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 화젯거리인 것이다. 적어도, 그는 누리꾼들에게서 잊히지 않고 살아있는 존재다.

최일구 앵커는 지난 11월 기자간담회에서 “팩트, 기자 본연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본령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진행의 연성화는 있을 수 있지만, 콘텐츠(보도)의 연성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MBC뉴스는 많이 무뎌졌다. (물론 최근 들어 급격하게 무뎌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평일과 주말 구별할 것 없이 민감한 현안에 대해 대차게 들이대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당돌함이 없어졌다. 또, 사안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도 무뎌진 채 두루뭉술해졌다. 기계적 중립에만 치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확하게 어떤 리포트가 문제인지 하나만 꼭 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MBC뉴스를 지속적으로 지켜본 입장에서 적어도 뉴스가 ‘무뎌졌다’고 판단한다.

▲ 최일구 앵커(오른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MBC
‘무뎌진’ MBC뉴스에 대한 평가는 <미디어스> 편집국 회의에서도 연일 나온다. <미디어스> 편집국은 매일 아침, 하루 동안 쓸 거리에 대한 회의를 한다. 신문, 방송 등으로 나뉘어 모니터링을 한 뒤 각자 맡은 부문에 대해 썰을 푼다. 구체적으로 방송 뉴스의 경우, 몇 개월 전만 해도 주로 KBS와 SBS가 비평의 대상이 됐다. 이와는 달리, MBC뉴스는 KBS와 SBS와 비교했을 때 그나마 ‘긍정적이다’ 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편집국 구성원 사이에서 “SBS의 뉴스가 좋아졌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특히 법조팀의 활약이 눈에 띈다. 나아진 SBS와는 달리, “MBC뉴스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MBC뉴스에 동물 관련 뉴스가 유독 많아지고 있고, 굳이 <뉴스데스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없을 만한 연성화된 뉴스가 많아졌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연일 <미디어스>에 비평 거리를 제공해주는 KBS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그나마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던 MBC의 보도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게 느껴지니 말이다. <PD수첩> 사태 당시, 원본 압수수색을 하러 온 검찰을 몸으로 막으며 ‘언론 자유’를 외치던 MBC 구성원들의 의지는 어디로 간 걸까. <PD수첩> 사태와 MBC노조 총파업 당시, 수많은 시민들은 무엇을 기대하며 촛불을 들고 MBC 앞을 지켰던 걸까. 적어도 지금,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접으면서 ‘현장에서 투쟁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던 MBC 노조원들의 의지를 현장에서 찾을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뉴스데스크>가 ‘말레이곰’ 코멘트로 화제가 된 지금 시점에서, 최일구 앵커를 향한 당부를 하고 싶다.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만큼만, 언론의 사명을 잘 감당해주길 바란다. 한 달 이라는 짧은 시간이 있었기에 오롯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최 앵커만의 코멘트를 해주길 기대한다. 기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코멘트를 통해 ‘죽어있는’ <뉴스데스크>가 다시 살아나고, 이를 바탕으로 무뎌진 MBC뉴스의 시선들이 바로 세워지길 바란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이라는 언론의 본연을 MBC가 충실히 감당하길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신경민 전 앵커가 클로징 코멘트에 대해 남긴 글을 덧붙인다.

“클로징 코멘트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뉴스 뒤의 프로그램을 기다리면서 지루한 광고를 참아준 시청자에게 편히 잘 자라는 덕담을 하기보다 편집과 제작에서 빠진 중요한 세상사와 시각을 앵커의 관점에 보완하고 싶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