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패스트트랙은 띄웠지만 국회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동물국회’ 상황에서도 이미 여러 번 나온 얘기지만 패스트트랙은 법안 내용이 아니라 절차를 결정한 것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이 이렇게까지 반발할 이유가 없고 앞으로 협상에 잘 응하면 된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패스트트랙 이외의 대목에선 자유한국당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상황의 진전이 쉽지 않다는 뜻도 된다.

패스트트랙을 통한 법안 처리는 최장 330일의 기간을 요구한다. 이 기간은 소관 상임위에서 180일, 법사위에서 90일, 본회의에서 60일로 규정돼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이 없의 법안 처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해놨는데 패스트트랙을 활용하면 330일간 여야 합의가 안 돼도 본회의에서 과반 이상 표결로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330일을 다 채우는 경우 새로운 선거제도를 통해 내년 총선을 치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시간 단축을 위한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여의도에서 회자되는 모양이다.

가장 간단한 대목은 본회의 60일 부분이다. 이 기간에 대해서는 국회의장의 재량이 발휘될 여지가 있으므로 문희상 국회의장이 결단하면 60일을 1일로 줄일 수도 있다. 다만 국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해야 할 국회의장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큰 게 문제이다.

다음으로 논의되는 것은 소관 상임위 180일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상임위원 3분의 1 요구로 성립되는 안건조정위를 활용하는 방안이 언급된다. 안건조정위에서 3분의 2 표결을 거친 안건은 상임위에서 표결처리할 수 있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상임위원 3분의 1이 요구하면 시작되는 절차인 만큼 원래는 소수파를 배려할 수 있는 제도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6인의 안건조정위원은 여야동수로 구성돼야 하는데, 즉 여당 3인에 1인만 동조해도 3분의 2 이상 찬성 표결이 가능한 구조다.

여기서도 이상적 상황을 가정한다면 단 1일만에도 안건 처리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내부 분열로 인한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바른미래당 등 다른 야당이 이런 식의 일방처리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사개특위와 정개특위의 6월말 활동 종료를 상임위 심사가 완료된 걸로 보자는 주장도 있다. 물론 완료가 아니라 법사위와 행안위가 이어서 법안 심사를 하는 게 옳다는 반론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경우 소관 상임위 자체가 법사위인 공수처법은 ‘법사위 90일’을 다시 한 번 거칠 필요가 없어 처리 시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법사위 90일 부분에선 법사위원장이 자유한국당 소속이라 해결방법이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것까지 고려해 종합하면 패스트트랙에 실린 안건은 모든 조건이 이상적 형태로 완벽히 맞아 떨어질 경우 90일을 조금 넘기는 수준에서 처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수준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소관 상임위에서 90일, 법사위에서 90일, 본회의에서 60일을 소진하는 240일 시나리오가 유력한 상황인 것 같다. 이 경우, 본회의 표결은 연말이 되기 전에 가능해진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0일 오후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회의 의석을 두고 산수를 해본다면 선거법 개정에 확실히 동의하는 세력만 모아도 과반을 간신히 달성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여당 내의 반란표 등을 고려해야 한다. 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지역구 상황이나 공천 등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는 의원이 여당 내에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한 처리를 위해서는 바른미래당이 당적 차원에서 협력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최근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바른미래당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분열 속으로 이미 진입한 것 같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오신환 권은희 의원의 사보임에 대해 울면서 사과도 했지만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의 지도부 사퇴 요구는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김관영 원내대표가 무리를 해서 까지 패스트트랙을 밀어 붙인 건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 아니겠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김관영 원내대표의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거나 이른바 ‘호남신당’이 성공한다는 가정 하에 더불어민주당과 연합공천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바른미래당의 분화에 맞춰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신당 등의 정계개편이 추진될 경우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셈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상황이 상식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사과할 때까지 천막당사 등 장외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을 빼들었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당분간 실제 장외투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건은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되느냐에 있다.

최근 1분기 성장률이 -0.3%로 목표치에 크게 미달한다는 통계가 공개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7조원도 안 되는 추경 논의를 거부하면서 일단 예비비를 지출하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또 자유한국당은 추경은 사실상 선거용으로 선심쓰기 정책의 일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어떤 논리를 들어도 민생을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추경안 심사를 자유한국당이 마냥 거부할 수는 없을 거라는 지적도 있다. 추경이 선거용이라면 그 조건으로부터 자유한국당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미세먼지나 재난 대책 등 지역에 투입될 예산을 결과적으로 막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돼버리는데, 이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만한 얘기다.

물론 이런 저런 이유 덕분에 자유한국당이 성실하게 논의에 응하게 된다면 지금 패스트트랙 수준에서 합의된 것보다 후퇴한 법안이 마련될 수도 있다. 이 중에서도 선거법은 접점을 찾는 게 불가능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여당 입장에선 추경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국회 상황을 풀 실마리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어떤 쟁점에서 후퇴가 불가피하다면, 이 후퇴를 단지 뒷걸음질이 아니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만들 수 있는지는 여당의 의지와 능력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국회에서 주도적으로 정책적 대안을 관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이를 살리지 못한다면 대기업 등 기득권에 호소하는 방법만이 남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자유한국당의 해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분노에 단지 편승하고 있을 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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