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오늘 또 유혈 낭자한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시간에 쫒긴 여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고 야당이 몸을 던져 강력히 저지하면서 빚어진 결과인데요. 국회 이곳저곳에서는 오늘 여야 의원들과 보좌관들 사이에 언성을 높이고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하루 종일 반복되었습니다. 삿대질하고 욕설을 마다않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일부 의원들은 서로 옷을 찢거나 주먹질을 날리는 게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민생을 도외시하는 폭력 국회,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의도에는 당분간 경색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치고 박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해져 가기만 합니다.

▲ 9일 KBS <뉴스9>
대충 이때쯤 되면 자주 듣게 되는 국회 소식이다. 한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상투적 대중서사다. 기만적 자유당정권과 억압적 박정희정권, 그리고 폭력적 전두환정권을 지나며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반복된 ‘자화상’의 내러티브다. 연말이면 빠지지 않는 난장판 국회 중계는 늘 독자의 탄식,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낸다. ‘폭력국회’에 관한 방송을 보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문을 읽으면서, 질 낮은 한국정치에 우리는 얼마나 실망하고 분통을 터뜨렸던가?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해 뽑은 ‘선량’들에게 이제는 ‘에라, 한심한놈들!’이라며 조소를 퍼붓는다. ‘쯧쯧, 한국정치가 그렇지 뭐!’ 하는 허무, ‘정치하는 놈들, 다 쇼하는 거야!’라는 냉소가 쏟아진다.

흘러간 시절의 지난 이야긴가? 똑 같은 소리, 똑 같은 반응을 자아내는 신문보도, 방송뉴스가 2010년 겨울공화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물론 현실이 그러니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냐고 반문할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르게 생각해 본다. 삐딱하게 생각하고, 비틀어 시비한다. 국회 꼴이 그렇게 개판이니 ‘난장판’ 보도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당연한 생각을 한번 바꿔 보자. 대체 왜 ‘식물국회’가 탄생했는지 그 배후를 들춰내지 않으면서, ‘폭력국회’만을 모두의 ‘자화상’이라 부각시키는 보도가 더 저질이 아닌가? 바로 이런 중계방송이, 정치를 무력화시키려는 정권과 함께, 지금까지 의회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또 지금도 대의정치를 개판으로 몰아넣고 있지 않은가?

‘형님예산’을 막판에 끼워 넣고 대신에 사회복지 예산은 통째로 들어낸 예산안을, 한나라당 의원들은 내용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여성가족부라는 걸 떡하니 두고, 인구재생산은 통치의 중대사라 주장하는 정권이 영유아예방접종예산을 싹둑 잘라낸다. 부자감세정책을 펴다보니 국고가 텅텅 되게 된 탓인지, 모든 걸 지역과 가계에 미룬다. 결국 가난한 어미와 아비, 실직자와 무직자, 벌거벗은 삶들의 공익이 아닌, 4대강개발 자본과 소수 ‘정벌(政閥)’의 이권을 위해 편성된 예산안이 일방 통과된다. 서울대법인화법도. 그 과정에서 신체적 충돌과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어쩜 자연스러운 일이다. 야당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난장판 그림을 의도하고 그렇게 밀어붙였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한국정치는 국회를 도구화하고 무력화하는 반정치적 권력의 비민주적 의지로 점철된 역사다. 연말의 폭력상은 이런 체계적 천박성의 일회적 표식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권력의 정치봉쇄는 대의제의 무력화로 이어지고, 의회정치의 억압은 자연스레 폭력충돌의 사태로 연결된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사태의 원인은 (대의)정치를 망가뜨린 치안스테이트에 있다고 하겠으며, 정치적으로 책임있고 사회적으로 성실한 저널리스트라면 바로 이런 구조적인 원인을 먼저 따져볼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보수매체는 그런 기본기를 전혀 갖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징후를 본질로 전도하고, 결과를 원인으로 왜곡한다. 국회의 타락을 강조하면서 정치실종을 초래한 정권의 훨씬 더 큰 책임을 감춰버린다.

의회정치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부추기면서, 대의정치를 원치 않는 정권의 의도에 은밀히 복무한다. 군사독재의 시절을 한참 지난 지금도 반복되는 꼴이다. 주류 신문과 제도 방송은 이구동성으로 앞서 인용한 기사를 읊는다. 한나라당 예산안의 내용이 대체 어떠한지 탐사 취재하는 노력은 눈곱만큼도 안한 신문들이, 의회정치가 왜 지금처럼 ‘식물국회’로 와해되었는지 깊이 있게 조명하고 해설하는 그 어떤 비판적 기사도 내놓은 적 없던 방송사들이, 심각한 포즈로 국회의원 모두와 의회정치 전체를 싸잡아 질타한다. 진짜 저질이지 않습니까?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 아닌가요? 이렇게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요? 정말 웃기지도 않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판을 바꿔야 합니다.

▲ 9일 KBS <뉴스9>
누가 국회의원들을 로봇으로 만들었는지, 무엇이 의회정치를 허깨비로 바꿔놓는지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여당 의원들이 어떻게 자동 거수기로 전락하고 여당 소뇌부들이 어떻게 불도저 기계로 바뀌었는지, 정치적으로 비생산적인 정국경색의 원인은 어디에 있고 또 민주주의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파국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지 차분히 짚지 못한다. 군사정권 당시의 선전 행태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국회정치, 대의정치, 제도적 민주정치를 고사시킨 정권의 책임을 따지려는 의지의 부재. 난투극 장면만 부각시키는 선정주의. 여야를 싸잡아 욕하고 여야 모두에게 책임을 미루는 양비론. 맞은 자과 때린 놈에게 똑 같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면서, 상대가 먼저 그랬다는 이들의 비난을 옮기는 기계적 중립주의.

말했듯이, 이런 보도는 지금의 충돌을 낳은 구조적인 문맥, 심층적인 원인을 가리는 점에서 심각한 한계를 지닌다. 사태에 대한 합리적 진단 가능성을 가로막고, 사태의 책임 있는 해소 가능성을 방해하는 전형적인 희석식, 상투적인 물 타기식 뉴스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처럼 폭력성을 부각하고 의회정치의 타락상을 강조하며 여야를 싸잡아 욕하고 국회를 통째로 비난하는 보도가 가져오는 치명적인 정치 봉쇄의 효과성이다. 이런 보도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불신을 낳고, 대의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회의와 반감을 부추길 뿐이다. 대의정치의 수행성 향상이나 진보적 재구성의 가능성까지도 차단하는 반정치적 여론기관의 작동 사례에 다름 아니다.

후진 한국 정당정치 책임이 마찬가지로 질 낮은 보수매체에 상당히 있다. 정치 악순환의 결정적 고리. 정권의 치안통치에 의해 국회정치·의회정치가 크게 무력화된 상태에서, 이번 예산안 처리와 같은 일방주의가 작동하며 그래서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매스미디어가 ‘무능한 국회’ 혹은 ‘폭력 국회’ 같은 상투적 비난을 반복하면, 의회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과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이 늘어나고, 결국 위기의 정당정치·대의정치만 더욱 심각한 위기 상태로 빠져들 뿐. 치안 스테이트 정치차단의 위기가 의회정치의 위기로 뒤바뀐다. 과연 대의제에 대한 이런 부정적 여론의 연출, 회의의 제조 공작은 직접민주주의 실천, 새롭게 모색 중인 진보정치에 유리할까?

조중동에 대해서는 입만 아프니 관두자. 그러나 대의제를 무력화시켜버리다시피 한 정권의 책임은 방기한 채, 코피 터진 야당의원과 뺨이 긁힌 여당의원 사이 혈투의 기계적 중계에 몰두하는 KBS가 정치실패에 큰 책임이 있다는 점만 분명히 하자. 의회위기에 대한 MBC, SBS 보도의 공동책임도 따지자. 쌍 팔년도 시절의 저질뉴스를 양산하면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정당정치를 불능화하며 대의체계를 단속하려는 세력에 의도적 혹은 결과적으로 복무하면서, 궁극적으로 공화국의 위기에 공모한 사실을. 입법부의 실질적 작동이 공화국 구성의 핵심 요건이라 적시한 게 칸트였던가? 대의제에 손가락질하고 그렇게 손가락질하게끔 부추기는 당신들의 선정주의는 대체 누구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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