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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의 '문 대통령 선거제 이중잣대', 사실일까2016년 선거구 획정 당시 새누리당 '벼랑 끝 전술' 들추는 자충수…'검토→반대'는 예나 지금이나
전혁수 기자 | 승인 2019.04.30 11:39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에 대해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2016년 새누리당이 선거구 획정을 강행하려고 하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인 문 대통령이 "선거법은 경기의 규칙으로 지금까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나 직권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발언을 앞뒤 과정에 대한 설명 없이 기사로 다뤘다. 그러나 당시와 현재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30일자 조선일보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文대통령, 野대표땐 선거법 강행 반대했는데…> 기사에서 "자유한국당은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에 대해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면서 강력 반발했다"며 "과거 문 대통령이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두고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는 것"이라고 썼다. 

▲30일자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새누리당이 선거구 획정을 강행하려고 하자 '선거법은 경기의 규칙으로 지금까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나 직권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비판했었다"며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남의 이야기 하듯 하실 일이 아니라 여당에 내린 명령과 지시를 거두고 타개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고 썼다. 

즉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시절 발언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것과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선거구 획정을 밀어붙이려고 했던 것은 상황이 다르다.

2015년 하반기 선거구 획정 논의 과정에서 여야는 강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획정 인구편차를 인구비례 2대1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의석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선거구 획정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했으나 새누리당은 난색을 표명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사항이기도 했다.

인구비례 문제의 근본 해결책인 의원수 정수 증원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했다. 새누리당이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고 지역구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대치국면은 장기간 이어졌다.

▲지난 2015년 선거구 획정 논의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 정의화 국회의장(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 (연합뉴스)

여야 대치가 이어지자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병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중재안을 제안했다. 2015년 12월 4일 이 전 의원은 여야 국회의원 모두에게 보낸 설명자료에서 '균형의석제'를 제안했다. 지역구, 비례의석을 260대40으로 하되 40석 비례의석은 정당득표율과 지역구를 연동해 50% 의석을 보장해주는 안이었다.

이병석 의원의 중재안에 새정치민주연합은 동의하겠다는 입장을 냈고, 새누리당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돌연 균형의석제에 반대 의사를 내면서 협상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거구 획정 협상이 새누리당의 말바꾸기로 공전하자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나서 "의장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데, 선거구 획정 문제에 있어선 새누리당이 좀 과하다"며 "형님이라고 볼 수 있는 여당이 너무 당리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 출신이다.

이후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국회의장 직권 상정 가능성 등이 제기되자, 2016년 1월 14일 문재인 대표가 선거구 획정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문 대표는 "10여 차례 협상을 하는 동안 새누리당은 단 한 번도 대안을 제시한 적 없다. 당론까지 바꿔가며 수정안과 재수정안, 재재수정안을 수없이 제시하는 동안 새누리당은 언제나 빈손으로 와서 '반대'만을 외쳤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표는 "선거법은 경기의 규칙이다. 지금까지 일방의 밀어붙이기나 직권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며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기대 언제나 '벼랑 끝 전술'을 선택해왔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7년 2월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 회원들이 18세 투표권,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은 달랐다. 2016년 4월 13일 총선을 마친 직후부터 21대 총선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선거제도 개혁 운동에 원내 정당들도 동참했다.

지난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정치원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대표는 '마지막 숙명'을 거론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과거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온 정의당과 원외정당들도 이 주장에 동참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두 차례 꾸려졌지만, 한국당은 '반대'만 되뇌인 채 대안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한국당의 입장을 물을 때마다, "선거제 개혁은 권력구조 개편 개헌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10일 간 단식을 치르고 나서야,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1월 중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합의처리 하겠다는 5당 원내대표 합의서에 사인했다.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나경원 원내대표가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고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한국당은 1월 합의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월이 되자,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러자 한국당은 비례대표를 모두 없애고 의석수를 270석으로 축소해 지역구 의원만 선출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국회의 존속 취지를 부정하는 퇴행적 안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져나왔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준연동제에 배치되는 의견을 내 협상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대다수였다.

한국당의 이 같은 태도에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이 시작됐다. 패스트트랙은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 당시 지나친 법안 처리 지연을 막기 위해 최장 330일 간의 숙고기간을 두되 해당 기간 동안 합의의 정신을 발휘하자는 정치권의 공통인식으로 만들어진 방식이다. 직권상정, 본회의 표결로 이어지는 다수의 횡포는 막고, 너무 풀리지 않는 법안은 신속히 처리해보자는 얘기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패스트트랙이 당장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아닌 만큼 협상 속도를 높여보자는 취지로 제안했다.

▲30일 사개특위 회의가 열린 회의장 앞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복도에 누워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조차 용납할 수 없다며 국회를 마비시켰다. 25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 당이 과반일 때에도 한 번도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적이 없다"며 관례에 따라 선거제 개편을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당의 그간 행보와 대안이라고 내놓은 안의 수준으로 봤을 때 협상은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의견이 높았다. 한국당은 정개특위, 사개특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회의의 진행을 막아섰다. 30일 자정을 전후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완료되자, 나경원 원내대표와 한국당 의원들은 "의회민주주의가 죽었다", "문재인 독재" 등을 외치며 회의장 앞 복도에 드러누웠다.

문재인 대통령과 나경원 원내대표 모두 선거제도는 여야 합의처리가 원칙이란 점을 밝혔다. 그러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처럼 크게 다르다. 물론 원인제공자가 한국당이란 점에는 차이가 없다. 나 원내대표의 문 대통령의 '선거제 이중잣대' 주장이 공허한 이유다.

전혁수 기자  wjsgurt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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