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가요계를 아이돌 천하라고 명명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방송국들이 선물하는 1위 트로피를 많이 차지하고, 연말 시상식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각종 음원과 음반 판매 순위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남미녀인 소년 소녀들의 재능이 커버하는 음악의 범위가 처음의 댄스 음악 일변도에서 벗어나 락, 발라드, 힙합 심지어 트로트로까지 확장되면서 한국 가요계가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분야의 음악을 선호하더라도 그곳에는 기획사의 체계적인 발굴과 훈련 아래서 만들어진 이들이 강력한 팬덤과 개인적인 매력, 호감,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실력으로 거침없이 그 차트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돌의 시대는 어쩔 수 없는 반작용, 일부 대중들의 불만과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똑같은 기계음 가득한 음악, 몇몇 작곡자들의 손에 놀아나는 비슷한 노래들의 반복, 해외 음악의 유행과 히트한 선두 주자들을 따라 비슷하게 변하는 조기축구 같은 따라하기, 노래하는 가수로서의 자질보다는 외모나 춤,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 가능한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이 더 우선시되는 이상한 뒤바뀜이 만든. 진짜 ‘가수’에 대한 목마름이 그것이죠. 2010년 연예계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슈퍼스타K2의 선풍적인 인기는 바로 이런 노래 잘하는 가수에 대한 갈증, 현재 가요계에 대한 불만이 결합된 현상입니다. 아이돌도 좋고, 걸그룹 보이밴드들이 대세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소박하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 가요계의 실정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가요계의 모든 장르, 욕구를 집어삼켜버리는 아이돌 천하의 한국 가요계는 이런 대중들의 욕구마저도 새로운 여자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우며 해소시키고 있습니다. 올 한해 가장 활발한 협업 작업으로 기반을 닦고, 현재 활동하는 쟁쟁한 작곡자들에게 가장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녀 가수. 좋은날을 타이틀곡을 앞세운, 무게감이 남다른 작곡자들을 참여시킨 3번째 미니앨범으로 각종 차트와 화제를 점령하고 있는 아이유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그녀의 출발 역시도 다른 여자 솔로 아이돌과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말랑말랑한 댄스곡을 내세우며 시작한 그녀가 이렇게 빠른, 독특한 성장과정을 거치며 커버릴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유는 현명하게도 서두르기보단 한 호흡 길게 돌아갔습니다. 다른 경쟁자들, 잘나가는 걸그룹을 쫒아 과도한 컨셉으로 이미지를 소비하거나, 꿀벅지의 원조라는, 외모나 외형적 매력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유행을 쫒는 곡 선택이 아닌 자신만의 장점인 따스한 음색과 가창력을 조금씩 납득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죠. 또래의 어떤 아이돌들보다 많은 라디오 출연을 소화하며 수많은 곡들을 자신의 버전으로 부르며 대중들의 귀에 아이유의 이름과 함께 자신의 목소리를 익숙하게 만들며 탄탄한 지지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기타를 들고 어떤 노래든 아이유의 식으로 소화하는 특이한 소녀의 존재는 많은 음악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듀엣하고 싶은 1순위의 가수로 자리매김하며 ‘잔소리’와 ‘그대네요’의 히트를 이끌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뮤지션 일변도의 길을 걸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지금 SBS 영웅호걸의 에이스 카드로 활약 중이고, 활동 재개를 앞두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심야 음악프로의 단골손님인 그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11월 가수로 활동하며 귀가 까다로운 이들에게 가수로서의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고, 심지어 스타크레프트 시즌 2의 선수 소개 성우로 목소리를 빌려주기도 합니다. 노래 잘하고 음악성도 갖추고 있지만 귀엽고 웃기고 예쁜 아이돌이기도 한. 대중들의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면서 동시에 대세인 추세에도 전혀 어긋나지 않은 종합 선물 세트. 아이유의 장점은 바로 아이돌 같지 않은 아이돌이란 묘한 걸침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그녀의 위치는 독보적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이 겹치는, 아이유에 앞서 비슷한 길을 걸었던 선배 윤하가 뮤지션으로서의 고민이 깊어지며 성장통을 겪고 있고, 걸그룹 출신의 솔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태연은 아직 소녀시대와 함께하기에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유는 현재 한국 가요계가 선보일 수 있는 솔로 여자 아이돌의 끝판왕 같은 존재에요.(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그녀들이 성장한 이후 보여줄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그녀의 이번 미니앨범은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서 등장한, 자신의 행보에 무척이나 큰 자리를 차지할 활동입니다. 그녀의 핵심 지지기반인 오빠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을 만족시키는 좋은 가사, 3단 부스터로 명명되는 후반부의 폭발적인 고음부분으로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기에 부족함 없는 잘빠진 타이틀곡을 무기로 그녀는 2010년의 마지막을 달구고 있습니다. 비록 다음 주로 예고된 지드래곤과 탑의 듀엣 활동 때문에 정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꼭대기 위에서의 시간이 아닙니다. 현재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끝판왕의 자리는 차곡차곡, 긴 시간동안 꾸준하게 쌓아왔고 점점 더 경쟁자를 찾기 어렵게 단단해지고 있거든요. 이제 18살에 불과한 그녀의 전성기는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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