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은 꽤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음주운전자에 의해 숨진 고 윤창호 씨 친구들이 올린 국민청원으로 ‘윤창호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답답한 사람이 혼자 치고 마는 신문고가 아니라 정부가, 사회가 함께 일하는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확인해주었다. 그 청원에 동참한 시민의 수는 최종 406,655명이었다.

한편 고 장자연 씨 사건을 재수사하고 수사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청원은 무려 738,566명의 참여가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만들어진 이후 현재까지 최다의 기록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느끼는 ‘장자연 사건’의 의미는 무겁다. ‘미투’가 없었던 시절 한 여성이 받아야만 했던 일방적인 폭력과 강요의 출구는 죽음뿐이었던 그 고통과 공포에 대해서,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잊지 않고 여전히 몸서리를 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7일 광화문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고 장자연 씨 사건을 언급하면서 “다 묻혔던 사건,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던 이 사건을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시해도 되는 것이냐”고 소리쳤다고 한다. “다 묻혔던 사건”이라는 말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얼마 전 세월호 유족에 대한 막말로 물의를 일으켰고, 황교안 대표는 이에 대한 징계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도 ‘장자연 사건’에 대한 망언을 더하고 있다. 황 대표 말대로 ‘장자연 사건’은 묻혔었다. 진실과 정의도 함께였다. 그것을 국민들이 잊지 않고 끝까지 파헤쳐 달라는 것이 10년 전과 다른 지금의 ‘장자연 사건’이다.

공교롭게 황교안 대표의 막말 몇 시간 뒤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장자연 사건을 다뤘다. 다시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는 장자연의 이름과 조선일보 사장 일가의 이름들이 등장했다. 이것도 대통령이 시켜서 벌어지는 일들일까? 황교안 대표에게 국민청원 73만 명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자연 사건 등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요구한 것은 묻혀진 사건들의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다. 정의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무엇이겠는가. 묻히고 덮어진 진실. 그래서 피와 살은 다 썩어 없어진 진실. 그것을 파내어 밝은 빛 아래 드러내는 것이 정의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자유한국당이 외치는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래도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페이지 갈무리

자유한국당의 27일 집회에는 “독재타도, 헌법수호”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등장했다. 요즘 자유한국당이 즐겨 쓰는 구호이다. 패착이다. “독재”라는 단어는 쓰면 쓸수록 자유한국당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구호가 높아질수록 잠시 잊고 있었던 자유한국당의 근본이 드러나게 될 뿐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요즘 즐겨 사용하는 “독재타도”가 성토인지 실토인지 무척이나 헷갈린다.

그런 가운데 28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했다. 22일 시작되어 20만 명을 채우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29일 아침 무렵에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황교안 대표의 ‘장자연 사건’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시민들이 요구하는 진실과 정의에는 공소시효라고는 없다. 아무리 묻고 덮어도 송곳처럼 뚫고 나오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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