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은 2010년 한국 축구가 발견한 '최고의 보석' 가운데 한 명입니다. 물론 지난 2008년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지난해 U-20(20세 이하)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맡는 등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걸은 몇 안 되는 젊은 선수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그 상승세를 이어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면서 이제는 '기대주'가 아닌 꽤 주목할 만한 '에이스'로서 각광받게 됐습니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과 책임감, 그리고 여기에서 묻어나는 탄탄한 기량과 창의적인 플레이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그의 성장에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다는 전망을 내놓은 사람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구자철이 최근 유럽 진출을 타진하다 스위스 리그의 영보이스에 러브콜을 받고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구자철 측은 구체적인 이적료까지 제시받으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구자철이 직접 9일 스위스로 떠나면서 뭔가 진전된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진출이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던 구자철 입장에서는 자신이 바랐던 유럽 진출을 이룰 수 있게 된 면에서 부푼 꿈을 안고 스위스로 향하게 됐습니다.

▲ 아시안게임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예선전에서 구자철이 프리킥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구자철은 전반 두골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구자철의 스위스 진출에 대한 시선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고, 박경훈 제주 감독도 선수의 장래를 위해 말리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 2008년 염기훈의 웨스트브롬위치 입단 추진 당시 사례처럼 팀 차원이 아닌 선수 개인 차원에서 사전에 계약을 맺을 목적으로 스위스로 떠났다면 사전 접촉으로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선수 개인 차원으로나 규정상으로도 스위스 진출 추진 자체가 구자철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적다는 얘깁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구자철의 스위스 진출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위스 리그 수준 때문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K-리그보다 수준이 더 떨어지는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 해서 무슨 득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을 떠돌다 일본 J리그에 진출한 이근호의 사례를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근호는 J리그 데뷔 첫 해 초반에 매 경기마다 골을 넣으면서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생각했지만 슬럼프에 빠지자 자신의 장기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1년 사이에 '거의 잊혀진 선수'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가능한 K-리그보다 더 환경이 좋고, 수준도 높은 리그에 가서 직접 부딪혀보면서 뛰어봐야 슬럼프나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이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텐데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는 자신의 장점마저 떨어지는 '부작용'도 감당해야 합니다. 상승세를 타는 구자철이 이 시점에서 스위스에 진출해 적응에 실패하고 정체기를 겪는다면 이에 따른 불이익도 감당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물론 이것이 개인 차이일 수는 있어도 환경적인 면에서 훨씬 좋은 팀에서 뛰어야 선수 개인에게도 득이 될 텐데 스위스 리그는 그럴 만한 여건이 아니라는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끊이지 않는 듯합니다.

스위스 리그는 UEFA(유럽축구연맹) 리그 순위에서도 13위에 머물 만큼 변방 리그나 다름없는 리그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끔 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FC 바젤 정도가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상당히 뒤떨어져있습니다. 유럽 축구를 오래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런 리그에서 주목을 받아 빅리그에 진출하는 것은 거의 '하늘에 별따기'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도 만약 빅리그 직행을 모색한다면 더욱 어려운 면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같은 유럽권이라 해도 리그 수준이 떨어지다보니 정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활약을 꾸준하게 보여준다 할지라도 빅리그 중하위권팀에 아주 조금 주목을 받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기적인 시각의 '유럽 진출'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의 '유럽 진출'을 바란다면 스위스 리그보다는 그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네덜란드나 프랑스 리그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와도 같습니다.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보다 박지성, 이영표 같은 '형'들의 전철을 밟아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구자철은 잉글랜드 블랙번, 그리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잠재력이나 기량 면에서 상당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1달 뒤에 있을 아시안컵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면서 더 좋은 팀으로의 이적을 추진할 기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시기에 유럽 유수의 많은 구단들은 좋은 활약을 펼칠 구자철을 주목할 것이고, 실제 성과가 있다면 입단 추진을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잘 할 수 있는,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갑작스럽게 '그저 그런 팀'에 들어가서 과연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의 꿈을 이루고,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만 들어봐도 구자철의 스위스 진출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미래로서 유럽에 진출하는 소식 하나만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구자철에게 성숙함과 신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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