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과 공수처 법안 등을 담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안이 합의되고, 각 당들이 의원총회를 열어 추인하자 자유한국당은 즉각 반발하며 장외투쟁과 함께 “20대 국회 없다”며 보이콧을 예고했다. 벌써 17번째 보이콧 선언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없이 합의했다며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제1야당을 패싱한 채 패스트트랙을 거래하는 선거법 쿠데타”라고 주장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반발하지만 이번 패스트트랙 합의에 포함된 공수처 설치의 경우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개혁법안이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국민의 뜻을 저버린 정당의 몽니에 막혀 개혁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유한구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주도로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에 의한 패스트트랙에 대해, 이제 와 날치기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23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저지 및 의회주의 파괴 규탄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부분의 언론들은 자유한국당의 투쟁보다는 내홍을 겪는 바른미래당이 이 패스트트랙을 끝까지 견인할 것인지에 더 관심이 크다. 실제로 여야4당이 합의한 법안들이 무사히 국회 본회의까지 가는 것부터가 난항이 예상된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는 법안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국회 본회의 의결은 고사하고 먼저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먼저 거쳐야 한다.

일단 정개특위는 여야4당 위원들이 모두 찬성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합의대로 통과될 것이다. 문제는 사개특위이다. 사개특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바른미래당 소속 2명이 모두 찬성해야 한다. 국민의당 출신 권은희 의원과 바른정당 출신 오신환 의원이 여야4당의 합의에 대한 준수여부를 가늠할 키를 쥐게 됐다. 그런 가운데 오신환 의원이 23일 새벽 SNS를 통해 패스트트랙 안건 중에 공수처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오신환 의원이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반대의사를 밝힌 것은 현재 바른미래당이 겪고 있는 내부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23일 바른미래당의 패스트트랙 합의 추인은 가까스로 통과될 수 있었다. 12대 11의 아슬아슬한 표차였다. 패스트트랙 추인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당이 깨질 위기를 맞았다. 기자들을 만난 유승민 전 대표가 밝힌 “당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가볍지 않아 보였다.

오신환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쨌든 오신환 의원의 반대 의사 표명으로 바른미래당은 다시 오 의원의 사보임(특위 의원 교체)의 선택이 놓이게 됐다. 여야4당의 합의를 지키려면 오 의원 대신 패스트트랙에 찬성 의원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바른정당 출신들의 반발은 피할 수 없다. 김관영 원내대표의 사보임 결단에 패스트트랙과 바른미래당의 운명이 모두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여야4당의 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다면 바른정당 출신들이 아니더라도 본회의 통과는 그나마 낙관적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만장일치로 추인했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에 이탈만 많이 없다면 후일 본회의 통과는 가능하다. 김관영 원내대표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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