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경상남도 거제시가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숙박비와 경비를 지급해왔다. 집행 명목은 '외빈초청여비'로 거제시는 제작진과의 협의 하에 시 홍보 예산에서 관련 예산을 집행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른바 '협찬'으로 불리는 제작지원비 외에 숙박비와 경비를 세금으로 별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지적과 함께 제작비에 포함돼 있는 숙박비와 경비를 지자체로부터 별도 지급받은 방송사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자체와 언론사의 경우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의 적용 대상이라는 점에서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제시청 전경 (사진=연합뉴스)

2018년도 경남 거제시 예산집행 내역과 미디어스 취재내용을 종합하면, 거제시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채널A '도시어부', KBS '땐뽀걸즈', MBC '호구의 연애', SBS '시크릿 부티크' 등 각 10명 내외의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진에 '외빈초청여비' 명목으로 숙박비와 경비를 지급했다.

집행된 '외빈초청여비'는 채널A '도시어부' 366만원, KBS '땐뽀걸즈'는 4차례에 걸쳐 총 304만 9천원, MBC '호구의 연애' 270만원, SBS '시크릿 부티크'(촬영예정) 339만 5천원 등이다. 또한 거제시에서 올로케이션 촬영이 된 KBS '땐뽀걸즈'의 경우 2750만원의 제작지원비가 별도로 지급된 상태였다.

거제시는 시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 같은 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방송사를 대상으로 촬영지를 추천하기 위해 사전답사 등 공격적인 제안을 하거나, 방송사가 촬영을 시작하게 되면 제작진 편의를 제공하는 식이다. 담당 공무원의 해명에서는 방송 촬영지에 선정되기 위해 방송사에 편의를 제공한 정황들이 보인다.

거제시청 담당 관계자는 "저희는 이런 식으로 (방송사와)유대관계를 좋게 하고, 촬영하기 좋게 하는 의미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방송사에서도 문의를 많이 준다"며 "알아서 오는 경우도 있고, 저희가 먼저 요청을 드려 공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사가)일부러 여기까지 오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홍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했을 때 저희가 원하는 홍보를 할 수 있으니 외빈초청여비의 효과는 비용 이상으로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채널A '도시어부'는 감독·작가·출연진을 초청해 외빈초청여비를 집행했다", "MBC '호구의 연애'는 프로그램 논의 단계에 있을 때 작가, PD, 제작진을 초대해서 저희가 촬영을 원하는 장소를 투어했다", "SBS '시크릿 부티크' 감독·작가를 촬영 전 시로 초청해 논의했고, 논의가 잘 돼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 "KBS '땐뽀걸즈'는 올로케로 진행이 되어서 예쁜 그림이 나오게 하려고 모셨더니 '그림이 잘 나온다'하는 부분이 있어서 최대한 배려해 초청비 할당 예산으로 집행했다" 등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2017년 채널A '도시어부'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의회 예산을 편성해 이렇게 하고 있다. 시에는 많은 홍보효과가 있다"고 덧붙여 시 홍보효과를 재차 강조했다.

시 홍보효과와 별개로 외빈초청여비를 지급한 지자체의 장이 프로그램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사례도 있다. 2017년 10월 5일 방송된 채널A '도시어부'에서는 당시 권민호 거제시장이 출연했다. 출연진들이 낚시에 나서기 전 고사를 지내는 상황에서 갑자기 권 시장이 현장을 방문해 "낚시가 잘 돼서 거제시 분위기가 확 떴으면 좋겠다"며 격려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프로그램 내용과는 관계 없는 장면이다.

채널A <도시어부> 2017년 10월 5일 방송화면 갈무리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집행기준에 따르면 '외빈초청여비'는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초청하는 국내·외 인사에 대한 항공료, 숙박비, 식비 및 지방시찰 여비, 버스 임차료 등에 한해 집행할 수 있다. 외빈초청경비의 지원여부와 지원수준에 대해서는 상호주의를 엄격히 적용하도록 명시돼 있다.

방송사 소속 프로그램 제작진 및 출연진이 지자체가 공식초청한 '외빈'에 해당되는지, 상호주의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지, 제작지원비를 이미 지급했거나 지급할 수 있음에도 별도의 명목으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프로그램 제작비에 숙박비와 경비가 포함돼 있음에도 지자체로부터 비용을 별도로 지급받은 방송사 역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같은 사례에 대해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협찬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냥 로비인 것 같다"며 "일종의 업무추진비로 사용했어야 한다고 봐야하는데, 협찬이나 업무추진비가 아닌 다른 명목으로 뒤로 돌려 부당한 집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김영란법 위반 소지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협찬을 통해 정상계약을 맺고 지원비 활용이 이뤄지는 것인데 그것과 별도로 숙박지원을 했다. 명목이 외빈초청여비라면 그것은 원래 사용해야 하는 금액을 달리 사용한 것 아닌가"라며 "통상적인 협찬계약 범주를 벗어나고 방송사에 지나치게 유리한 지출을 했다면 거제 주민들 입장에서는 예산 낭비다. 제작비 안에 원래 포함되는 금액인데 숙박비까지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평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도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는 기자의 해외취재 시 그걸 기업 등에서 지원해서 나갔는데 김영란법 적용되고 나서 지금은 언론사 자비로 해외취재를 나가지 않나.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며 "취재는 아니지만 방송제작인데, 제작에 필요한 체제비를 방송사가 들여야 하는데 그걸 방송 대상으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 보면 김영란법 저촉 가능성이 상당히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해당 사례에 대한 김영란법 위반 소지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해석을 요청한 결과, 권익위는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나 청탁금지법 상 금품수수 금지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 제8조 8항, '다른 법령 기준 또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에 해당할 수 있어 방송법 상 위반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및 전문가는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 방송 협찬과 관련한 법적 미비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방송법상 협찬고지에 대한 규제는 존재하나 협찬 자체에 대한 법률 조항은 없고,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협찬고지에 한정해 규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협찬고지에 관한 규정이라는 것도 애매해서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협찬인 걸 밝히는 등의 제도정비가 안돼 있는 상태"라며 "협찬문제와 관련한 법적 미비 상황을 이용해 예산을 집행하고, 아예 다른 항목으로 추가 예산을 집행한 것 둘 다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고지에 대한 규칙만 있을 뿐 협찬 계약을 어떻게 맺고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기준이 불분명하다. 그에 따른 폐해인 것 같다"며 "협찬이 너무 광범위하게 만연한 게 문제다. 협찬은 특정 영역에 한정해서 쓰여야 하는데 촬영비용에서 써야할 것 까지 광범위해졌다"고 꼬집었다.

정연우 교수도 "협찬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재 방통위도 규제를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비용을 지급하면 그 비용은 방송프로그램 내용에 반영될 여지가 굉장히 높다"면서 "그래서 현금협찬은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현금이나 현금성 지원을 받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 현금지원은 당연히 광고효과를 기대하는 것, 약속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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