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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적폐청산은 이들 드라마 속 아재들처럼![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4.20 09:31

어느덧 '적폐청산'이란 말 자체가 구태의연해지는 듯한 상황에 여전히 그 임무를 가열차게 실천하는 분야가 있다. 뜻밖에도 그건 시청자들의 밤을 밝히는 드라마들이다. 월화수목금토, 우리는 매일 저녁 현실이 되어야 할 이야기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드라마로 만난다. 

<열혈사제> 분노는 정의로 치환된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

시작은 본당에서 쫓겨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제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통에 대뜸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는 트라우마에 절어 폐인이 되어가던 그를 거둬주었던 이영준 신부의 구담성당으로 오지만, 그가 맞닥뜨린 건 이영준 신부의 죽음이다.

이영준 신부 자살위장 사건 그 뒤에는 구담 구청장, 경찰서, 구담시 국회의원 그리고 특수 수사부 부장 검사 등 구담구 지역의 카르텔이 있었다. 당연히 김해일 신부는 분노하고 혈혈단신 이 사건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전직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답게 거침없는 그의 액션은 답 없는 세상에 답답해하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며 시청률로 보답을 받기 시작한다. 

구담구 지역 카르텔로 시작했던 사건은 '왕맛푸드 사건'을 거쳐, 버닝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무렵 절묘하게 구담구 내의 사교클럽 ‘라이징 썬’ 사건으로 연역해내며 드라마의 현실성을 증폭시켜나간다. 한편, 김해일이라는 독고다이 분노조절장애 사제의 헌신을 구대영 형사(김성균 분),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하여, 서승아 형사(금새록 분), 한성규 사제(전성우 분), 김인경 수녀(백지원 분), 오요환 편의점 직원(고규필 분), 쏭싹 중국집 배달원(안창환 분)까지 구담구의 정의로운 시민들을 구담구 카르텔에 대항하는 ‘구담구 어벤져스’로 재편하며 드라마의 전선을 살려냈다. 

현실에서 지지부진한 '버닝썬'은 드라마 <열혈사제>로 오면 달라진다. '라이징 썬'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문홀딩스의 차명 사업자들, 아들을 문홀딩스 대표로 내세운 박신우 의원, 구담구청장 정동자, 구담 경찰서장 남석구, 검사 강석태 등을 속 시원하게 까발리고, 이들이 구담구 어벤져스의 작전에 따라 서로 이전투구하며 몰락,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과정을 통쾌하게 그려내며 박수를 받는다. 

<닥터 프리즈너> 통수 위에 외통수

KBS 2TV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KBS2 <닥터 프리즈너>를 연 이는 태강병원 응급의학센터 에이스였던 의사 나이제(남궁민 분)이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도왔던 고지식한 의사였던 그는, 태강그룹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으로 인해 아끼던 환자 부부를 잃는 건 물론, 의사 가운을 벗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자신이 투옥되었던 서서울 교도소의 의료과장으로 부임하고자 한다. 

왜 교도소 의료과장이었을까? 여기엔 바로 나이제가 의사직을 잃게 된 깊은 원한의 이유가 있다. 형사소송법 471조에 의거하면, 형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을 때 해당 교도소 과장의 동의를 받아서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일개 교도소 의료과장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서서울 교도소에서 그 권력을 누려온 이가 바로 선민식(김병철 분)이었다. 그는 이런 교도소 의료과장의 재량을 이용해 재벌, 정치인 등의 형 집행 정지를 시켜주고 돈과 권력을 누려왔고, 그 과정에서 나이제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나이제의 선민식을 향한 복수는 곧 교도소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져왔던 부도덕한 정재계 카르텔에 대해 칼을 겨누는 것이 된다. 

교도소 의료과장 자리부터 출자자 명부, 하은 병원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선민식과 나이제의 통수에 통수는 결국, 복수와 정의를 향한 나이제의 ‘외통수’ 앞에 선민식이 무릎을 꿇고 만다.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 정의의 목적에 충실한 '다크히어로' 나이제의 방식은 <열혈사제>의 분노 액션과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이제의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하은 병원을 선민식에게 받아내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야심차게 내보인다. 결국 카르텔의 허브였던 선민식을 제친 나이제가 궁극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은 태강그룹이라는 재벌, 그중에서도 자신의 승계를 위해 ‘살부'도 불사하고 정민제 의원마저 살해 사주한 이재주(최원영 분)과의 본격 한판승이다. 

과연 재벌회장을 상대로 한 외통수 나이제의 통수 작전이 이번에도 먹힐지, 엎치락뒤치락 선과 악의 롤러코스터가 주는 마력이야말로 <닥터 프리즈너>의 결정적 매력이다. 

<더 뱅커> 금권 카르텔에 대항하는 고지식한 선의 

MBC 수목 드라마 <더 뱅커>

매회 끝을 알 수 없는 통수의 향연인 <닥터 프리즈너>의 가장 큰 희생양은 아마도 동시간대 수목드라마 MBC의 <더 뱅커>일 것이다. KBS2 드라마의 부진을 깨끗이 잊게 만든 <닥터 프리즈너>가 20% 시청률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김상중, 유동근, 채시라 등 쟁쟁한 출연진의 호연에 잘 짜인 대본으로 승부수를 건 <더 뱅커>는 안타깝게도 4%대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더 뱅커>를 평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만화는 물론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감사역 노자키>의 리메이크작인 <더 뱅커>는 대한은행이라는 금융계의 절대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정의의 드라마틱한 전개로 열혈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직이었던 공주 지점장 노대호(김상중 분)는 지점 폐쇄라는 불운을 겪지만, 뜻밖에도 행장 강삼도(유동근 분)에 의해 감사로 위촉된다. 벌써 3번이나 행장을 연임한 강삼도는 어수룩한 노대호를 감사 자리에 앉혀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배임 행위'로 육관식 부행장을 밀어내는 데 이어, KT 부정취업 비리가 연상되는 국회의원, 국정경제 자문회의 부의장, 금감원장의 압력인 채용비리사건으로 도전무(서이숙 분)를 토사구팽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이 등장한 부행장 이해곤(김태우 분)이 은행을 개혁할 거라며 자신의 편에 서라는 회유에, 그건 부행장님의 권력욕일 수 있다며 돌아선 노대호 감사. 드라마는 이합집산하는 대한은행과 그를 둘러싼 정재계 카르텔 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의 길을 고지식하게 고수하는 감사의 정점이 어딘가 궁금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행장 강삼도가 그가 꺼내든 은행개혁과 관련된 D1보고서를 덮으라 하며, 노대호의 동지였던 한수지(채시라 분)까지 부행장으로 회유한다. 그렇게 <더 뱅커>는 본격적인 노대호 대 강삼도의, 일개 감사와 대한은행을 배경으로 한 금융 카르텔의 권력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이제이’, 적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하는 데 그 누구보다 교활한 강삼도 앞에 우직한 노대호 감사의 칼날이 먹힐지, 거기에 이해곤과 한수지의 욕망의 끝은 어딜지, 욕망과 정의의 파노라마 그 귀결점이 궁금하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근로감독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무한하다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근로감독관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걸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보여지듯, 각종 정치적 외풍과 거기에 더해 금권을 전횡하는 기업주에 맞서 일개 공무원이 근로기준법을 ‘법대로’ 구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바로 이 법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법대로'하는 히어로가 된 근로감독관 조장풍을 길어낸다. 

일찍이 유도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덕분에 폭력 교사로 낙인이 찍혀 직장과 가정을 잃은 바 있었던 조진갑은 어렵사리 얻은 근로감독관이란 직분을 ‘복지부동’으로 버텨가고자 한다. 하지만 교사직을 잃게 만들었던 그 학폭사건의 희생자였던 소년이 이제 다시 상도여객의 운수 노동자로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예의 불의를 참지 못하던 '조장풍'의 기질을 살려낸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그 어떤 조폭이 떼를 지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배포에, 눈앞에서 깐죽대며 쳐보라는 구대길 이사장(오대환 분)을 향해 대뜸 주먹을 날려버리는 대책 없는 용기.  이번에는 그저 당하지만은 않는다. 그 시절 그의 은혜를 입었던 천덕구(김경남 분)가 운영하는 갑을기획의 특출 난 사업능력을 뒷배로 하여, 구원시 노동지청은 물론 검찰까지 회유한 구대길이 몇 천의 벌금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려 하자 약간의 트릭을 거쳐 운행정지라는 법적 조치를 끌어낸다. 그리하여 벌금을 메꾸려 밤낮없이 혹사당하던 버스와 운수 노동자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묘수를 통해 근로감독관으로서의 법적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진갑의 법적 해결은 뜻밖에도 시민의 발을 정지시켰다는 역풍을 맞고 조진갑은 진상조사위에 회부된다. ‘좋게 좋게 해결하자’는 조사위원들에게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까'라며 당차게 반문한 조진갑. 그런 가운데 구대길은 고의파산을 통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한다. 조진갑에게 넘겨진 가짜정보의 압수수색과 구대길의 해외 도피, 그 간발의 차이를 넘어 결국은 구대길을 구속시키며 근로감독관으로의 첫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현실’이 되어야 할, 현실적인 적폐청산 드라마들 

SBS <열혈사제>, KBS2 <닥터 프리즈너>, MBC <더 뱅커>,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열혈사제>부터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까지 주중, 주말을 휩쓸며 답답한 현실 대신 시청자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드라마들.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모두 '아재'들이 주인공이다.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직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아재들, 그들은 자신을 혹은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우리 사회 카르텔에 도전한다. 드라마는 이 ‘평범한 시민’의 각성과 실천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도전의 키가 되는 건 뜻밖에도 그들의 ‘직업’이다. <열혈사제>의 김해일 신부는 그 이전에 그가 속했던 국정원 요원이라는 직업이 지금 그가 해결해가는 사건에 주된 '마스터키'가 된다. 나이제 역시 ‘의사’였던 그의 과거가 지금 그를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에의 도전부터 선민식, 이재준에 대한 복수의 길에 가장 유리한 방패이자 칼이다. <더 뱅커>의 감사 노대호나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근로감독관 조진갑은 두 말할 나위없다.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직업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건들로 인하여 그들의 '정의'가 불지펴진다. 

아재들의 투철한 적폐청산,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핏대를 올리며 '정의'를 목 놓아 외치지 않는다. 분노조절장애 김해일 신부는 외려 때론 그의 분노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순수하며, 그래서 그의 분노는 중독성 있게 주변 사람들을 오염(?)시켜 전선을 확장해 나간다. 시니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나이제의 여유와, 아재 개그를 남발하며 썰렁해서 어느덧 정이 가버린 노대호의 아재스러움, 거기에 몸무게를 불려 그 덩치만큼 넉넉해진 조진갑의 넉살이 이들 드라마의 날선 경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았다던 그 전설의 복서처럼,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매료시켜 내 편의 긴장을 풀어주되, 결코 정의의 전선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투철함으로 이 시대 넉넉한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한다. '넉넉함'과 '투철함', 어쩌면 이들 드라마의 환영받는 주인공에게서 사람들이 그리는 히어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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