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조현병 환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일어났다. 과거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랬듯 범행이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를 골라 공격했다. 범행 장소가 아파트였기 때문에 더 끔찍한 느낌이 든다. 돌아가 편히 쉬어야 할 공간인 내 집과 가까운 곳에 가장 끔찍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은 견디기 어렵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은 경찰이 미리 막을 수 있었던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범인이 이전부터 주변 이웃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해왔고 주민들이 이 사실을 경찰 등 관계 당국에 알렸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이 방치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문제이다. 따라서 경찰이 조현병 환자들의 실태를 미리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대다수 언론의 지적인 것 같다. 실제로 경찰과 보건당국이 조현병 환자 관리 등에 있어서 정보 공유 등을 좀 더 원활히 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예정돼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치료 등의 책임이 환자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는 상황에선 이런 해법도 한계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단지 정보를 공유하고 경찰이 선제적인 어떤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제도를 실제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조현병 환자를 1차적으로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를 놓고도 각 기관이 책임을 서로 미룰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특별히 높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병의 특성상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르기 어려운 상태인 환자가 더 많다고 한다. 끔찍한 범죄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애초부터 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범인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로 방치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조현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범죄에까지 이르게 되는 전형적 케이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아예 가족이 떠나 치료의 기회가 없어지는 등의 사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망 사건이 발생해 해당 아파트가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점을 되짚어 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조현병 환자를 파악하고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치안 정책뿐만 아니라 의료 제도에 가까운 영역에서도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는 다르지만 최근 이런저런 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대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문제가 발견된다. 주변의 지속적인 도움과 적절한 치료가 있으면 마약 중독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약 중독자는 마약에 다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마약 구매 자금 조달을 위해 단순투약자가 판매상이 되고, 마약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권에 더 깊숙히 뿌리를 내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역에 이런 문제를 실질적으로 전담할 수 있는 기관이나 조직이 체계적으로 존재한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보건소 등에 관련 기관이 설치돼 있지만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두려면 이런 관련 조직이 최대한 지역 커뮤니티에 밀착된 형태가 되어야 하고, 환자를 단지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 복귀를 돕고 일상 생활의 영위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인력과 예산의 문제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후보자 문제로 한바탕 힘겨루기를 한 정치권은 이제 추경예산 편성이라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국면에 놓여 있다. 정부 여당은 미세먼지나 강원 산불 등 재해용 추경에 경제 살리기 등을 위한 추경을 더해 총 7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시급한 재해용 추경만 따로 분리해 제출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18일 밝힌 바 있지만, 어느 면으로 보나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써야 할 때라는 것은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물론 재정이 확장적이어야 하는 국면이라는 점이 추경편성을 무조건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 등은 총선용 선심성 예산이라는 비판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25일 제출 예정인 추경안의 내용을 실제 봐야겠지만, 최근 지역 개발 공약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자유한국당의 이런 공세는 더 강해질 것 같다.

이런 전형적인 논쟁 구도보다는 이번 기회에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앞서 언급한 형태의 사회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게 만드는 등의 안전에 관한 비용을 어떻게 투입할 것인가를 여의도에서 성실하게 논의하고, 이 결과를 갖고 각 정치 세력이 지역 유권자들을 설득해 대안적 정치로 연결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개발과 이권다툼에만 목을 매는 게 아니라 실제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갖춘 지역정치의 틀을 만들어 내야 우리 주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일견 정치와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는 치안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요즘 정치 뉴스를 보면 이런 생각도 다 꿈 같은 얘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자조를 하게 된다. 땜질식 대책으로 적당히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대응을 하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문제 원인의 뿌리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정치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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