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16일 어느 방송에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이 나왔다. 이제는 미래로 가야한다며 세월호 참사를 정쟁에 이용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이 문장 자체에 100% 동의한다. 문제는 누가 무슨 이유로 세월호 참사를 정쟁에 이용하고 있느냐는 거다.

차명진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썼다가 지웠다는 글은 전형적이다. 유가족들이 더 많은 보상(사익)을 받기 위해 정치적으로 행동(불순한 동기)하고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차명진 전 의원의 글은 맥락도 문제지만 보상금 10억원 등 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거의 ‘가짜뉴스’로 분류해야 할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덩달아 신난(?) 정진석 의원이 올린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받은 메시지를 공유한다는 형식이고 유가족이 아닌 정치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해명이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같은 내용이다. 17일 조선일보 사설에도 똑같은 논리가 나온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팽목항의 방명록에 “고맙다”고 쓴 걸 다시 언급하며 “억지에 가까운 의혹들이 여전히 횡행하고 또 '책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한다.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미련을 버릴 줄 모른다”고 썼다.

“고맙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이미 당시에 해명했다. 참사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고칠 기회를 줘 고맙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산 자의 애도라는 얘기였다. 헬조선 정치의 세계에 이런 낭만적 해명은 통하지 않다는 것을 조선일보는 보여준다. “고맙다” 세 글자를 갖고 대통령 되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 거라는 메시지를 도출해내는 저열한 정치관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인터넷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 발견된 댓글이 아니다. ‘1등신문’을 자처하는 메이저 일간지의 표현이다.

세상만사 정치와 관계가 없을 수 없으나 굳이 ‘정쟁’에 참사를 이용하고 있는 쪽을 지목하라면 그것은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다. 16일 안산에서 열린 기억식에 황교안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걸 봐도 그렇다. 대중이 계란을 던질 때 그것을 맞아주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이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아예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면 이런 지적에서 끝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인천에서 열린 일반인 희생자 추도식에는 또 갔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전 정권에서도 자유한국당은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을 분리하는 정치적 시도를 했었다.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특권화돼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있고, 당시 야당이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에게도 관심과 배려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전선을 형성한 것은 ‘디바이드 앤 룰’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내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앞에서 열린 5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이 문제를 ‘정쟁’의 시각을 보는 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5일 세월호 참사 처벌 대상에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이전 정권 인사 일부를 포함시켰다는 이유도 작용한 걸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 수사팀에 해경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과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광주지검 수사팀을 보복인사조치 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검찰 수사가 다 된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시 박영수 특검은 황교안 대표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채로 수사 기간 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사를 종료했다. 이때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한 당사자가 황교안 대표이다. 이후 검찰이 이 대목을 수사했지만 당시 광주지검 관계자들만 조사를 받았고 법무부나 대검찰청 소속 핵심인사들은 조사를 받지도 않은 상태로 수사가 종결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해태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2015년 1월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와 집권 여당의 원내지도부, 해양수산부 공무원들 등이 모여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의 사실상 무력화를 모의했다. 세월호 특조위 내의 당시 여당 추천 위원들은 거의 모든 활동을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서 진행했다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자신이 처벌 대상으로 지목돼 ‘정쟁’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바로 이런 맥락을 상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책임자 처벌을 거부하고 방해해온 사람들이 5년째 유가족 흠집내기에 몰두하면서 ‘정쟁’을 그만두자고 하니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과거 자유한국당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전적으로 협력했다면 이제와서 ‘정쟁’을 말할 일은 애초에 없었을 수 있다.

차명진 전 의원과 정진석 의원 두 사람의 글이 논란거리가 되자 자유한국당이 신속하게 ‘징계’를 말하는 걸 못미더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5.18 망언’ 의원들의 징계절차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 때 임명된 윤리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지 한참 지난 15일에야 새로운 윤리위원장이 임명됐다. 자유한국당 윤리위는 19일에나 회의를 열고 징계 안건을 다룰 예정인데 그마저도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낼 것은 아니라고 한다.

황교안 대표는 취임 이후 정권 비판에는 극단적 목소리를 냈지만 자신들의 흠이나 당내 문제에 있어서는 과단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으니 때만 되면 ‘망언’을 늘어 놓는 자유한국당의 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 줬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다 하겠다는 전향적인 태도 역시 보였으면 한다. 그래야 자유한국당이 그렇게 싫어하는 ‘정쟁’의 구도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지금처럼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정쟁’을 부추기고 가짜뉴스를 지지층 결집의 기회로 삼는 야비한 정치의 민낯을 재확인해주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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