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캐시와 재회하게 된 월리는 과거에 인공수정을 통해 나은 남자아이도 함께 만납니다. 그런데 어랍쇼? 어딘지 모르게 이 소년은 자기와 닮은 구석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답지 않게 냉소적인 말투하며 무심한 표정 그리고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월리의 분신으로 느껴질 만큼 쏙 빼닮았습니다. 심지어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싫어하고 월리를 더 잘 따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궁금하던 월리는 그제서야 옛 기억이 차츰 떠올라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데... 도대체 그날 밤에 월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제가 앞의 문장에서 굳이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장르의 형태"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치>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절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영화에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고, 제니퍼 애니스톤의 비중 자체가 굉장히 적습니다.
우선 <에브리바디 올라잇>에서도 레즈비언 커플이 그랬지만, 문화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소재는 일단 차치하기로 합시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고 있습니다. 고로 싱글 여성으로서 연애에 대해 가지는 입장이나 그로 인해 인공수정을 택하게 되는 배경 따위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 건 일면 당연합니다. 그렇다 보니 캐시는 영화의 이야기에서 거의 배제된 상태로 진행이 됩니다. 그녀는 그저 뜻한 바가 있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고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와 월리로 하여금 "네가 얘 아빠다"라는 것을 상기케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역할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는 택하고 있는 소재에 반해 극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도 빈약하지만 무엇보다 일단 별다른 재미요소가 없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자 필수인 웃음마저 거의 얻을 수 없고, 그렇다고 말미에 딱히 감동을 준다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는 꽤 괜찮은데 연출에서 방향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두 편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어느 하나로 중지를 모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엔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는 상황입니다. 코미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영화로 말이죠...
그나마 <스위치>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역배우인 토마스 로빈슨입니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사실상 연출에 발목을 잡히면서 제 실력을 발휘할 여건이 되질 못했습니다. 제이슨 베이트만은 그럭저럭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캐릭터 자체가 돋보이지 않다 보니 영화를 이끌고 가기엔 다소 부족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걸맞게 아이답지 않은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인 토마스 로빈슨의 역할이 <스위치>에서 가장 돋보입니다. 그마저 없었다면 이 영화의 현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두 명의 감독은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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