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떤 역사일 수 있겠지만 소풍 보낸 자식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 가족들에게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헛된 희망을 갖게 되는 날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고통은 유가족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에게 세월호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두 가지 무서운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를 비판해야 마땅한 언론은 그 기능을 포기한 채 권력자를 위해 국민의 눈을 속이는 야바위꾼으로 전락했다. 소위 기레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정권은 결국 민의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약간의 고통이 없지는 않았지만 언론들은 여전히 안녕하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 <세월호 5년, 그리고 '기레기'> 편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과 언론에 쌓인 분노를 터뜨렸다. 세계를 놀라게 한 수백만 개, 수천만 개의 촛불이 곳곳에 켜졌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참사 당시 오보와 왜곡보도를 일삼은 방송사 기자들을 향해 야유했고, 결국 그들을 쫓아냈다. 리포트하는 기자는 마이크에서 자사 로고를 떼야 했으며, 아예 광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건물 복도에 숨어서 리포트를 해야 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쫓겨나는 굴욕과 절망을 겪었던 방송사들은 세월호 이후, 촛불혁명 이후 얼마나 달라졌을까. 세월호 참사로 인해 보통명사화한 ‘기레기’는 사라졌을까. 언론으로서는 피해갈 수 없고, 시민들로서는 반드시 물어야 질문이다. 그러나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기레기라는 단어를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에 ‘보도 참사’를 더한 언론은 잠시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신호도 없지는 않다. 다만 그런 조짐은 겨우 공영방송이라는 틀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 참 옹색하고 못난 변명이다. 세 끼 굶다가 두 끼 굶으면 부자가 됐다고 할 판이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 <세월호 5년, 그리고 '기레기'> 편

4월 15일, 4월 16일 티비편성표에는 세월호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16일 밤에 KBS1 TV에서 재방영하는 KBS 스페셜 ‘세월호 엄마들의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재방송이 유일하다. 그나마 14일 일요일 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세월호 5년 그리고 기레기’라는 내용을 내보냈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세월호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에는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 채널A를 사직하고 포털에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연재를 통해 종편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던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이명선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잠깐 화제가 되었던 ‘KBS 젊은기자들의 반성문’을 썼던 강나루 기자 등이 출연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되짚은 세월호 보도참사는 다시 봐도 끔찍하다. 참사 당시 오보와 유가족을 욕보이는 보도를 일삼았던 언론은 이후에도 엉뚱한 곳으로 국민들 시선을 돌리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참사 원인을 쫓아야 할 언론은 전혀 엉뚱한 취재에 열을 올렸다. 유병언 씨 아들 유대균 씨에게 보도를 집중했다. 전파낭비이자 국민기만이었다. 그 태만과 기만은 그러나 과거형이지 않다. 기레기는 현재진행형 명사이다. 아직도 곳곳에서 “기레기가 기레기했다”라는 냉소가 가득하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 <세월호 5년, 그리고 '기레기'> 편

15일과 16일 편성표로 보아 방송은 벌써 세월호를 잊었다. 잊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잊고 싶고, 덮고 싶은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을 끄집어낸 용기만이 보일 뿐이다. 세월호는 그만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독일은 나치 전범에 대해 아직도 추적하고 처벌한다. 그토록 선진국을 부러워하면서 왜 선진국의 정신은 외면하려는 것일까.

적어도 공영방송들은 5년 아니라 50년이라도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자신들이 그 참사의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반성했다. 그러나 그 한번으로 씻길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쉽게 자신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이라도 잊지 않은 것이 다행이면서도 참혹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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