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장르로 구분하게 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습성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특정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했을 때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서 첫 번째로 도출되는 공식이 바로 장르죠. 다시 말해 장르는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관객들의 호응도를 가장 손쉽게 가늠해볼 수 있는 도구입니다. 물론 특정 장르가 계속해서 관객들로부터 인기를 얻는다면 제작사로서는 그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이어집니다. 이러한 순환에 따라서 최근에 화제가 된 장르는 단연 페이크 다큐입니다.

페이크 다큐는 이미 10년 전에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로 흥행에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보였던 전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클로버 필드, Rec>등의 영화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잠잠했던 이 장르는, 작년에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폭발적인 성공을 기록하면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으로 인해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생겼으니... 다들 아시다시피 페이크 다큐를 도입하는 영화가 속속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파라노말 포제션>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제목을 달고 개봉한 영화마저 있어 이제 페이크 다큐라고 하면 이골이 날 지경입니다.

한 목사가 엑소시즘을 행하고자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함께 시골마을로 찾아가는 <라스트 엑소시즘>도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가진 영화입니다. 이쯤 되면 흥미는커녕 "또야?!"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도 남음이 있죠. 실제로 저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라스트 엑소시즘>이 개봉 첫 주말에 근소한 차로 2위에 올랐다는 걸 확인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지겨울 때도 됐는데 어째서 이만한 성적을 기록하는지 미국인들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 의외로 볼만합니다. 재미로 따지자면 얼마 전에 개봉했던 <파라노말 액티비티 2>보다 나을 정도입니다.

당연히 <라스트 엑소시즘>은 진짜 다큐멘터리처럼 도입부에 인물들의 인터뷰를 삽입한 것 정도를 빼면 형식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이나 관객의 시점이 곧 카메라의 시점이 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제한적인 공간을 활용하는 등등, 실제 현장을 촬영하는 것처럼 하여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애씁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미 관객에게 익숙하다 못해 진부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지겹다고 느껴졌던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따름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엑소시즘>이 저의 흥미를 끈 가장 큰 이유는 영화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목과 달리 <라스트 엑소시즘>은 우리가 아는 엑소시즘에 관한 영화가 결코 아닙니다. 제게는 이것이 일종의 반전으로 작용했는데, 주인공인 마커스 목사는 <엑소시스트>를 필두로 한 일련의 엑소시즘 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와 사뭇 다릅니다. 그에게는 종교인으로서의 사명감도 없고 신앙심마저 흐릿합니다. (사실상 종교인이라기보다는 퍼포먼스에 능한 예능인에 가깝다고 해도 딱히 실언은 아닐 겁니다) 엑소시즘이라는 종교의식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라 마커스 목사가 바라보는 그것은 신앙심과는 별 관련이 없는 심리치료 - 돈까지 벌 수 있는 - 에 불과합니다.

가업이다시피한 엑소시즘을 행하여 온 마커스 목사는 한 소년이 엑소시즘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 짓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려는 두 사람과 함께 엑소시즘의 실체를 보여주고 종교의 폐해와 비리를 폭로하고자 나섭니다. 이들은 마커스 목사에게 도움을 청한 시골마을로 찾아가 악마에게 빙의가 됐다는 소녀를 만나고 엑소시즘을 하는 과정을 촬영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커스 목사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몇몇 장치를 가미한다는 것을 촬영팀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그는 엑소시즘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줄 계획이었던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마커스 목사는 자신의 말대로 조작된 엑소시즘만으로 소녀를 낫게 합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났다고 생각하며 마을을 떠나기 직전에 뜻밖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관객들이 한 가지 의문을 품게 하고, 결말부에 다다르기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이것이 사실 연출의 힘이라기보다는 특이한 이야기가 가진 매력에 기인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결말이 좀 전형적이고 흐지부지하다 못해 허점이 있다는 것은 흠이긴 하지만 말이죠.

<라스트 엑소시즘>은 목사임에도 종교에 대해 냉소적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해묵은 논쟁인 "빙의는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신질환일 뿐인가?"에 접근합니다. 여기서 '해묵은 논쟁'이라 함은 '지겹다'와 이음동의어로 간주할 수도 있으나, 이 자체가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로서는 이색적이라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보았던 엑소시즘 영화는 특정 종교에 등장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앙심을 더 두텁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스트 엑소시즘>은 오히려 특정 종교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비판하는 시선을 견지하니 색다를 수밖에요.

다만 아쉽게도 오락영화의 본분에 충실한 이 영화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 영화가 보여준 용기(?)는 제법 가상합니다. 종교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다거나 엑소시즘이랍시고 행하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태는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니 전혀 근거 없는 얘기 또한 아니죠. 그와는 별개로 어찌 보면 <라스트 엑소시즘>은 페이크 다큐의 진화까지는 아니지만 변이는 보여준 영화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지겨울 만큼 봤다고 여긴 페이크 다큐와 그보다 더 케케묵은 소재를 혼합해 이만큼의 재미를 선사했으니 꽤 성공적인 것 아닐까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