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지만, 스쿨 미투(#me too) 운동은 더욱 더디게 움직이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KBS 1TV <거리의 만찬>이 학교 내 성폭력·성희롱을 폭로하는 '스쿨 미투'의 시작이 된 용화여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을 만나 왜 그들이 목소리를 내야만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학내 성추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학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체벌이라는 형식을 빌려 온갖 행태의 폭력과 맞먹는 성추행이 이뤄져 왔다. 그걸 동성이라는 이유로 성추행이라 하지 않았을 뿐이니 말이다. 물론 여학생에게 벌어지는 성추행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KBS 1TV <거리의 만찬> ‘아이 캔 스피크’ 편

학생들이 그렇게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음을 알면서 과감하게 목소리를 낸 것은 더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침묵이 결국은 더 많은 이들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자각했으니 말이다. 용화여고의 미투는 우연이 아니다. 잠재되어 왔던 분노가 폭발한 것일 뿐이다.

졸업생들은 늦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어쩌면 다른 수많은 선배나 친구들처럼 침묵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제 그 지옥을 벗어났으니 그만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 혹은 외면이 아닌 목소리를 밖으로 내기 시작했다.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을 위해 나섰다. 더욱 감동이었던 것은 후배들이 직접 화답했다는 것이다. 학교 유리창에 포스트잇을 통해 'WITH YOU'를 써 붙였다. 그 감동의 시간은 201일 동안 이어지며 여러 학교의 '스쿨 미투'를 이끌게 되었다.

용화여고에 처음으로 포스트잇을 붙인 학생은 어쩌면 이렇게 큰 울림으로 확대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쪽지 하나가 학생들을 깨웠다. 그리고 거대한 대자보가 걸렸고, 학생들은 창문에 우리 모두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붙이며 세상에 동참을 요구했다.

KBS 1TV <거리의 만찬> ‘아이 캔 스피크’ 편

그 작은 시작은 전국 학교로 번지며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이어졌던 교사들의 성추행을 세상에 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 학생들의 용기에 세상은 얼마나 화답을 해주었을까? 분명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더는 학내 성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죄를 지은 자들은 급한 소나기만 피하려고 한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폭군으로 군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잘못된 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그런 문제의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집안의 자식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현실 속에서 근본적 변화는 더디고 힘들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폭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해 교사가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말도 안 되는 부조리의 현장에 갇혀 있다. 입법을 하는 국회에서 더는 학내 성추행 사건이 벌어질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하지만 사립학교법 개정에는 소극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

금배지를 달고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국회에 꽈리를 틀고 있는 이상 세상은 변하기 어렵다. 국회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세상은 달라질 수 없다. 결국 국민들이 변해야만 국회가 변한다는 의미다.

KBS 1TV <거리의 만찬> ‘아이 캔 스피크’ 편

현직 국어교사가 함께한 점은 중요했다. 교사의 입장에서 '스쿨 미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듣고 싶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관심 없다"는 교사들의 입장은 담백할 정도다. '스쿨 미투'가 세상을 시끄럽게 해도 정작 교사들은 남의 일처럼 외면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은 가해 교사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한다는 점에서, 이 오래되고 강력한 집단의 실체를 알 수 있게 한다.

모든 교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사회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교사들의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학생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용기를 냈지만, 정작 교사들은 이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동료 교사들의 잘못된 행태에 분명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변화는 문제를 타자화해서는 절대 가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제 교사 집단이 나서 'WITH YOU'를 학생들에게 건네야 할 것이다.

교사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 집단 문화는 변할 수 없다. 그저 자리보전만 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교육 현장이 달라지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최소한 학내 부조리에 대해 학생보다 먼저 목소리를 내고 바꾸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교사의 자격과 존중을 요구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할 뿐이다.

학생들은 이미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물결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이제 그 변화에 교사들이 답해야 한다. 그리고 사학들 역시 도도한 물결에 맞서기보다 그 흐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이라도 해봐야 할 것이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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