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숙명여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가 '5·18 망언'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규탄 성명을 철회한 가운데, 성명서를 작성한 숙대 총학생회장이 유감을 표했다. 황지수 숙대 총학생회장(법학부)은 해당 성명서가 정치적 행위이자 여성혐오적 행위로 기능한다는 반대측 주장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황 총학생회장은 9일 자신의 SNS계정에 성명서 철회와 관련해 총학생회장이 아닌, 개인적 입장에서의 소회를 밝혔다. 앞서 8일 숙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숙대 제약학과 출신인 김 의원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재논의한 끝에 철회를 결정했다.

이번 성명 철회 결정은 성명에 반대하는 숙대 재학생들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해당 성명서가 숙대의 대외적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정치적 행동을 통해 숙대 내 여성 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615명의 학생들이 성명에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총학생회에 발송했다.

(사진=연합뉴스)

황 총학생회장은 "나는 대학생들이 사회의 부정의와 모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의견을 낼 수 있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며 "또한 나는 학생자치기구로서 학생회가 학내 의제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대학 밖의 사회에도 끊임없이 시선을 던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성명 철회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황 총학생회장은 "개인의 문제가 사실은 학교와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됨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학생회의 역할"이라며 "그런 점에서 김순례 의원의 망언을 규탄한 것은, 전라남도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란 나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자 여전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썼다.

이어 "개인 이름으로도 얼마든지 김순례 의원을 규탄할 수 있었지만, 총학생회장으로서 중앙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성명서를 발표한 이유는 숙명여대 학생들이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고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학교의 명예가 아니라 부정의와 모순에 대한 저항과 연대, 그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황 총학생회장은 '학생회가 정치적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여성으로서, 학생으로서, 노동자로서, 성소수자로서, 장애인으로서 살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들은 탈정치적인가"라고 되물었다.

또한 황 총학생회장은 "여성 정치인 규탄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회의에서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내게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폭력의 세계에 대한 전복이지, 기존의 폭력적인 세계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떤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가부장제의 역사를 답습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이 여성을 비판하는 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라, 그의 망언을 통해 다른 여성들이 아파하는 것이 여성혐오이며, 여성을 단일한 범주에 억지로 욱여넣는 것이 여성혐오"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순례 의원 규탄 성명서 철회와 관련한 황지수 숙대 총학생회장 입장 전문이다.

나는 대학생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지식인으로서, 또는 노동자로서, 진리의 전당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로서 사회의 부정의와 모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의견을 낼 수 있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나는 학생자치기구로서 학생회가 학내 의제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대학 밖의 사회에도 끊임없이 시선을 던져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의 문제가 사실은 학교와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됨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학생회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김순례 의원의 망언을 규탄한 것은, 전라남도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란 나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자, 여전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개인 이름으로도 얼마든지 김순례 의원을 규탄할 수 있었지만, 총학생회장으로서 중앙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성명서를 발표한 이유는 숙명여대 학생들이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고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내에서 권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수자로 분류될 수 있는 학생들이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것은 사회에 큰 의미를 던진다. 또한 내가 우리 학교에서 배운 가치는 동문 네트워크나 나의 이익, 학교의 명예가 아니라 부정의와 모순에 대한 저항과 연대이다. 그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었다.

총학생회가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여성으로서, 학생으로서, 노동자로서, 성소수자로서, 장애인으로서 살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들은 탈정치적인가? 정상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비정상들로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충분히 정치적이다. 견고한 정상의 논리에 균열을 내는 행위가 정치라면, 나는 지금보다 더 정치적이고 싶다.

여성 정치인 규탄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중운위 회의에서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게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폭력의 세계에 대한 전복이지, 기존의 폭력적인 세계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떤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가부장제의 역사를 답습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채로 여성 정치인을 비판할 수 있었다. 김순례 의원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여성이라서 그렇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을 하지 않고, 그의 비인간적 망언에 대해 분노할 수 있었다. 여성이 여성을 비판하는 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라, 그의 망언을 통해 다른 여성들이 아파하는 것이 여성혐오이며, 여성을 단일한 범주에 억지로 욱여넣는 것이 여성혐오이다.

성명서 철회로 인해 많은 분들께 깊은 상처를 안겨드리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다. 내가 어떤 사죄를 드려도 그 상처를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총학생회장으로서 중운위 위원들과 학우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 내 경험과 역량의 부족 탓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이 말을 걸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

이 사건이 여남공학대학교가 아니라 여자대학교에서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는 의의가 크다. 이러한 현실에서 앞으로 학생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나는 학생대표로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설득의 언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일련의 과정들이, 그리고 최종 결과까지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주저앉아 있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일어나 ‘오늘’을 살겠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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