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주총회를 통해 대한항공 조양호 전 회장의 연임이 저지되었다. 그렇지만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어도 대한항공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어 이번 주총의 반란은 상징적 의미면 몰라도 실질적으로 재벌을 퇴출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중세의 왕들처럼 무소불위의 권능을 휘두르던 재벌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의 상징성은 작지 않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조양호 전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잃게 된 것에 대한 국민연금의 역할을 지나치게 크게 부풀리거나 왜곡한 ‘언론’에 있다. 경제 문제는 어렵다. 그래서 시민들의 비판기능이 채 닿지 못하는 편이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 결과에 대한 보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핵심은 조양호 전 회장을 비토한 주총의 결과가 과연 전적으로 국민연금의 반대 때문이었냐는 질문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라는 것이다.

KBS 1TV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편

7일 방영된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부동산 문제와 대한항공 주총에 대한 언론 보도의 문제를 다뤘다. 이 자리에는 눈에 띄는 패널이 있었다. 지난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재벌의 경영방식을 조폭에 비유해 크게 화제가 되었던 주진형 전 한화증권대표였다. 주진형 씨는 이번 대한항공 주총 결과에 대해서 언론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말해주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회장의 연임에 반대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부터 꾸준히 취해 왔던 태도라는 사실이다. 주진형 전 대표는 이번 대한항공 주총의 결과를 국민연금이 주도했다는 언론의 보도는 ‘과장이거나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해외 연기금과 주총에 참가하지 않던 소액 주주들이 대거 참여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론이 조양호 전 회장에 반대해온 국민연금의 오랜 이력을 감추고, 과장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대한항공 주총 다음 날부터 이어진 보도들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국민연금이 재벌의 경영권을 무너뜨린다로 시작해 마침내 ‘연금사회주의’ 몰이로 귀결된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KBS 1TV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편

우선 연금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사용부터 문제가 있음을 주진형 전 대표는 지적했다. 연금사회주의라는 용어는 피터 드러커가 1976년 쓴 ‘Pension fund socialism’에 근거한다. 주진형 전 대표가 해석한 이 용어의 의미는, 미국의 연기금이 미국 기업자본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자본을 갖게 되는 것이니 연금사회주의라고 해도 좋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연금사회주의라는 용어는 미국 연기금의 기업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며, 그런 현상이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연기금의 의결권 확장은 미국 기업들을 좀 더 투명하게 경영하게 했다는 긍정적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본래의 연금사회주의라는 용어는 긍정적 의미를 담았으나 한국 언론은 대한항공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진에 얹어서 레드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위험한 선동용어로 탈바꿈을 시켜버린 것이다.

KBS 1TV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편

이에 대해서 변상욱 전 CBS 대기자는 전형적인 언론의 기술인 ‘우물에 독 뿌리기’에 비유했다. 대중이 이용하는 우물에 독을 뿌린 뒤 식수의 공급을 장악하는 언론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연금사회주의라는 규정을 통해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옹호하는 행위를 좌빨로 몰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준희 교수는 이를 ‘체계적 오독“이라고 표현했다. 언론의 적은 과거의 언론 자신이라는 말처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격하는 언론들은 과거 앞 다퉈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재촉했다. 기업과 언론의 코드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도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실체인 것이다.

인터넷만 뒤져도 금세 드러나는 그 실체에 대해 정작 언론들은 그 기억상실에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다.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그러나 기업의 광고와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언론이다 보니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찾기 어렵다. 장충기 문자에서 드러났듯이 자진해서 기업에 엎드려 구걸하는 것이 언론의 현실이다. 그 언론에 대해서 한 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존재가 더욱 빛나고, 소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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