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스폰서 없이 시즌을 치르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도 실패한 히어로즈의 2009 시즌 최대 수확은 내야수 강정호와 황재균을 발굴한 것입니다. 1987년 생 동갑이자 입단 동기인 두 선수는 나란히 전 경기에 출장하며 2할 8푼 대의 준수한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절친한 동료이자 선의의 라이벌로 잘 생긴 외모까지 갖춰 히어로즈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9 시즌 종료 후 이택근, 이현승, 장원삼 등 주축 선수들이 트레이드되면서, 새로운 스폰서 넥센의 후원을 받게 된 히어로즈의 전력은 크게 약화되어 유격수 강정호와 3루수 황재균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황재균은 2010 시즌 개막전부터 어긋났습니다. 3월 27일 롯데와의 사직 개막전에서 왼쪽 손목 부상으로 결장하자, 3루수로 대신 출전한 김민우가 1회초 선발 사도스키를 상대로 좌월 결승 솔로 홈런을 터뜨린 것입니다. 김민우는 2010 시즌 프로야구 홈런 제1호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황재균의 부상 불운이 김민우의 행운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황재균은 개막 이틀째부터 4월초까지 출장을 강행했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한 달 가까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의 부상 공백을 김민우가 메우며 황재균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5월 11일 광주 기아전에 복귀했지만, 5월 마지막 날 황재균의 타율은 0.227로 추락해 2009 시즌의 예리함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4월 중순 이후 부진에 빠지며 0.239까지 곤두박질 친 강정호의 타율은 서서히 오름세로 반전되었습니다. 5월을 마치며 0.293로 상승하여 데뷔 이후 첫 3할 대 타율을 노려보게 된 것입니다. 강정호는 6월과 7월을 지나면서도 3할 대 안팎의 타율을 유지했지만, 황재균은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009 시즌처럼 나란히 넥센의 간판으로 팀 타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7월 6일 사직 롯데전 이후 보름 넘게 1군에서 사라진 황재균은 7월 20일 전격 트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넥센의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출장한 경기의 상대였던 롯데가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것입니다. 시즌 전 이택근, 이현승, 장원삼, 그리고 시즌 중 마일영까지 주축 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한 넥센이, 절대로 트레이드하지 않겠다던 황재균을 내놓자 비난 여론이 비등했지만, KBO는 이틀 만에 김민성, 김수화와 황재균의 트레이드를 승인했습니다.

황재균이 4강 진출이 확실시되던 롯데로 팀을 옮기자, 강정호는 트레이드 발표 다음날 미니홈피에 데뷔 이후 가을 야구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아쉬워하며 황재균을 부러워하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되었습니다. 강정호와 황재균의 처지가 반전된 것입니다.

▲ 9월 22일 목동 LG전에서 8회말 2사 후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린 강정호. 강정호는 페넌트레이스와 아시안게임의 활약을 바탕으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롯데로 이적한 뒤 황재균은 새로운 팀에 대한 적응과 유격수로의 포지션 변경에 따른 수비 부담 때문인지 타율이 회복되지 못해 0.225로 페넌트레이스를 마감했습니다. 반면 강정호는 시즌 최종전인 9월 26일 문학 SK전에서 2타수 2안타로 타율 0.301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데뷔 후 첫 3할 고지에 극적으로 오른 것입니다. 2009 시즌 비슷한 기록을 남긴 두 선수의 2010 시즌 기록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강정호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가을야구 무대에서 황재균은 페넌트레이스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분전했습니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5타수 5안타 0.333로 활약한 것입니다. 하지만 롯데는 2승 뒤 3연패로 탈락했고 황재균의 2010년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2010 페넌트 레이스의 부진으로 인해 강정호와 달리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입니다.

가을 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강정호의 아시안게임은 극적이었습니다. 수비가 좋은 손시헌(두산)이 주전 유격수로 붙박이 기용되며 대회 초반 선발 출장하지 못했지만 최정(SK)과 조동찬(삼성)의 부진으로 대회 중반부터 3루수로 중용된 것입니다. 준결승 중국전에서 4타수 2안타로 타격감을 조율한 강정호는 결승 대만전에서 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금메달과 병역 혜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일 2009년과 같은 성적을 2010년에도 거뒀다면 강정호처럼 대표팀에 승선해 함께 병역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황재균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2009 시즌을 거쳐 2010 시즌 중반까지 강정호는 유격수, 황재균은 3루수로 각인되었는데, 황재균이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 유격수로 전업했고, 강정호는 대표팀에서 3루수로 활약한 것입니다. 두 선수가 포지션을 맞바꾼 셈이 되었습니다.

강정호가 병역 혜택을 받고 3루수로서도 가능성을 보이며 스토브 리그에서 가치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넥센은 강정호의 트레이드는 없다고 공언하지만, 황재균 트레이드로 인해 양치기 소년이 된 넥센의 공언을 믿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과연 강정호가 내년에도 넥센의 유니폼을 입고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편 롯데의 신임 양승호 감독이 이대호의 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1루수에 기용하고 중견수로 전준우를 3루수로 기용할 뜻을 밝히며, 황재균은 내년 시즌에도 유격수로 뛸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년 시즌 강정호와 황재균이 각각 어느 팀 어떤 포지션에서 경쟁하며 누가 더 나은 성적을 얻을지 주목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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