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침통하게 지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이 왜 이런 공격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머리가 싸늘해지는 느낌이다. 이번 도발이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안상수,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는 헛웃음마저 나왔다. 하나씩 짚어보자.

이번 공격의 문제점

이번 포격은 서해교전, 금강산 박왕자 사건 등, 그 동안의 우발적 충돌과 확연히 다른 사건이다.

첫째, 방사포까지 전진 배치한 ‘준비된 공격’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성이 문제다. 남측 영토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주권침해다. 남측 공격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선제타격이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둘째, 민간인 지역까지 조준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북측이 무엇이라 변명해도 이 문제는 이해할 수 없다. 해병대 기지를 주 목표로 삼은 것은 분명하지만, 백령도 남쪽의 민간인 거주지역까지 폭격한 것은 절대 오폭으로 볼 수 없다.

셋째, 폭격 후의 해명도 납득할 수 없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이 미리 배치된 인간방패였단 말인가? 민간피해 유감표명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 24일 오전 옹진군청은 전날 오후 북한군 포격을 받아 파괴된 연평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 옹진군청 제공
북한이 잃은 것

이번 공격으로 북한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통쾌한 쾌감과 내부 결속? 집권기반의 강화?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공격이었다.

첫째, 북은 이번 공격으로 남한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이웃, 언제든지 태도를 돌변해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이웃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수 있을까?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위협하는 것과 실제 손찌검을 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둘째,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정책,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정책 등,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제한해 버렸다. 이명박 정권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이런 공격의 내적 근거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역으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해 온 다양한 정책의 선택폭이 반감된 것 또한 사실이다.

셋째, 국제사회 열강들에게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빌미를 주었다는 점이다. ‘중국과 북한’대 ‘미일과 한국’의 대립이라는 신냉전 구조가 정치 외교적 대립을 넘어서 군사적 대치로까지 확대된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북은 이런 신냉전구도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이에 대응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 또한 무지하거나 뻔뻔하다. 이번 북의 도발이 햇볕정책 때문이란다. 반성도 대안도 없는 정권이다.

우리는 그 동안 이명박 정권에게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문을 존중하고 이행하라고 주장해왔다. 10.4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에는 서해안을 평화와 협력지대로 만들기 위한 내용이 있다.

1)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설정, 2) 경제특구 건설, 해주항 활용, 3) 민간선박 해주 직항로 통과, 4) 한강 하구 공동 이용, 5) 안변 남포 조선소 건설, 6) 개성 신의주간 철도 건설 등이다.

이런 합의사항을 이명박 정권이 존중하고 진척시켜왔더라도 이런 비극이 벌어졌을까? 더구나 이 합의사항들은 북쪽에만 이로운 사업이 아니라 개성공단처럼 남쪽 기업과 어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경제사업들이었다. 이런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포격을 가했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평화관리를 했나 압박만 했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북 압박정책의 실패다. 북한의 도발은 무모했고 용서하기 어렵지만, 이명박 정권 3년간 진행해 온 압박정책도 동시에 파탄 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북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적으로 봉쇄하며,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고립, 봉쇄, 압박에 결국 북이 붕괴하거나 굴복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무력분쟁으로까지 치달은 최근 상황은 이런 정책철학과 판단이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의 대북정책은 호전적인 상대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 냉전시대의 정치군사적 압박과 대립정책은 무력분쟁을 야기시켜 왔고, 남북이 모두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햇볕정책은 이런 고리를 끊고, 평화적인 통일의 길로 가는 정책이었다.

위기가 왔을 때 오히려 지혜로워야 한다. 사태를 서둘러 수습한 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과감히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 형식과 내용을 부분 수정하더라도 10.4 합의내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 남은 2년 내내 서해에서 한미군사훈련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휴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올 것이다. 작은 충돌이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결코 굴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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