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문제로 혼란을 겪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선진 외국의 사례가 자주 소개됐다. 외국의 방송구조와 그에 따른 법과 제도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이런 사례들이 얼마나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KBS 측에서 생산하는 정보와 언론에 보도되는 많은 경우에 있어 이런 사례들은 단지 수신료 인상 합리화를 위해 이용돼 왔다. 또 언론학자들의 논지도 광고와 수신료에 핵심이 맞춰져 있어 마치 수신료 인상이 곧 공영방송의 위상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양 보도되었다. 더구나 정권의 개입과 종편채널의 직접적 당사자들인 재벌신문사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국민들의 입장에선 올바른 상황판단을 하기엔 너무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까지 언급되어온 외국사례들을 종합 분석해보면 슬프게도 가장 중요한 핵심 질문들이 빠져있다. 즉 공영방송이 도대체 무엇인가? 또 국(관)영과 민영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수신료 제도는 왜 필요한가? 하는 근본적인 것들이 제외된 빗나간 토론이 중심을 이루었다. 무엇이 한국 공영방송 문제와 관련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할지는 건드리지도 않고 말이다. 무엇이 잘못 전달되고 또 이것이 어떻게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왜곡 전달되었는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KBS를 비롯 일부 언론학자들이 지지하는 한국의 수신료 인상건과 관련 외국의 공영방송 수신료를 비교한 부분부터 소개한다. 즉 KBS가 비교한 영국, 독일, 일본과 프랑스의 수신료 제도와 한국의 비교를 보자. 아래 자료에서 보듯 KBS의 주장대로 한국과 다른 선진국들의 수신료는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 출처: KBS (http://www.kbs.co.kr/susin/pubf/pubf_03.html)
여기에 KBS는 또한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공영방송 제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세계 50여 개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이들 주요 공영방송도 모두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컬러TV 뿐만 아니라 흑백TV, 라디오, TV수신카드를 장착한 컴퓨터 등에도 수신료를 받는 경우가 있으며, 지상파 컬러TV를 기준으로 비교할 때 수신료 금액이 우리나라의 4~8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출처: KBS, http://www.kbs.co.kr/susin/pubf/pubf_03.html)

다 옳은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비교는 진실을 왜곡하는 자료의 역할만 할 뿐이며, 일반 국민들을 속이는 치사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위 내용은 결국 KBS의 수신료가 30년간 동결되었으며, 한국의 수신료가 선진국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수신료 인상의 정당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또 일부 언론학자들도 이를 예로 들어 수신료의 현실화가 절실히 필요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수신료 격차는 더욱 커져 한국에 비해 현재 영국은 9.9배, 독일은 12.1배, 일본은 7.3배나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참고: 2010년 11월 19일자 연합뉴스: KBS의 “수신료인상안 합의 통과 환영”). 또 한국의 수신료는 아프리카 국가인 나미비아 보다 낮은 실정이라고 오성삼 건국대 교수는 “KBS 수신료인상, 공영성 강화 전제로(한국일보 11월 27일자)”라는 칼럼에서 KBS 수신료 인상을 BBC와 같은 광고 없는 공영방송으로 가기 위한 희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공영방송과 외국의 공영방송의 재원구조 사례를 들어 수신료 인상이 한국공영방송의 광고의존도를 줄이고 공익성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아래와 같은 자료들을 제시하며 KBS를 비롯한 수신료 인상 찬성론자들이 논리를 폈었다. 이것이 또 조중동과 같은 언론사들이 종편채널을 놓고 KBS가 넘겨줄 광고에 희망을 걸었던 사안이기도 했다.

▲ 출처: KBS (http://www.kbs.co.kr/susin/pubf/pubf_03.html)
하지만 지난 11월 19일 KBS이사회가 통과시킨 수신료 인상안은 그나마 광고축소란 내용조차 들어 있지 않았고, 수신료 1000원만을 올린 (2500원에서 3500원으로) 것으로 발표됐다. 한마디로 조중동은 “닭 쫓던 개꼴”이 되었고,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뭐 국(관)영방송을 돈까지 더 주고 보라구?”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독일의 사례를 들어 KBS 김인규 사장은 독일과 같은 독립된 방송사 재정수요 조사위원회(KEF: Kommission zur Ermittlung des Finanzbedarfs )의 구성까지 주장했다. 이런 독립적 위원회의 필요성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김 사장은 독일 공영방송이 수신료를 왜 채택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독일사례의 구체적 사안까지 알고 있는 듯한 “그 자신”이 무엇의 산물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공영방송체제를 제대로 안다면 김 사장은 즉시 직책을 내놓고 한국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방송사의 적합한 지배체제와 법적 제도장치 마련에 더욱 힘을 모아 외쳐야 할 것이다. 김 사장을 비롯 KBS이사회 같은 변태 조직구조는 독일 공영방송체제에선 태생 자체가 불가능하다.

앞에서 외국의 사례를 비교했듯이 가장 기초적인 상식부터 한번 묻고 넘어가야겠다. KBS의 주장대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 50여 개 국에서 공영방송 제도를 왜 채택하고 있을까?

그 일차적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서다. 이는 한 민주사회의 공정한 정치적 여론형성을 위한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 독립성은 국가와 상업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것이 공영방송이 국영방송 및 민영방송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공공미디어에 대한 수신료는 1923년 11월에 영국에서 시작했고, 독일에서는 1924년부터 실시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방송(라디오)은 태생 초기부터 한 국가의 선전도구로 악용되어왔다. 독일 나치 시대의 방송이 전형적인 한 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영방송의 모범사례처럼 알려진 BBC 역시 “공영방송 (Public Service Broadcasting)”이라는 이름 하에 식민지국가들에 영국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선전도구 역할을 했다. 말은 공영방송이지만 오늘날의 “공영”의 의미가 아니었다. 이것이 자국 안에서의 방송의 역할과는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과거의 방송들은 현재 한국의 KBS나 MBC와 같이 공영방송의 탈을 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업적 광고와 협찬프로그램 또 막장드라마가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공영방송 실태를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NHK를 제외한 아시아국가의 방송도 공영방송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영방송으로 정부의 선전도구이거나 인도의 Doordarshan과 같이 공영방송(1997년 11월부터)이란 형식상의 탈바꿈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정이 국가의 영향권 하에 놓여 있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도의 경우도 한국의 “자칭 공영방송”처럼 상업광고와 저질프로그램을 무방비로 방송하지는 않는다. 아시아국가들의 많은 방송관계자들은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국가뿐 아니라 세계 거대 상업방송들의 아시아시장 진출로 국가와 상업적 압력에 밀려 생존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경제적 미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언론도 미발달했을 것으로 믿고 또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경제적, 기술적 후진성이 곧 한 시민사회의 후진성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가 2002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 성적표다. 작년 2009년 세계 언론자유 성적표를 한번 들쳐보면 한국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즉 가나는 29위, 말리는 30위, 위에서 언급된 나미비아는 35위 등 한국의 69위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한국은 단 한번도 30위권 안에 든 적이 없다.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그나마 31위까지 했던 것이 한국의 언론자유 최우수 성적표다.

지난 30년 동안의 선진국들의 수신료 인상만을 비교하지 말고, 먼저 한국 방송이 그간 한국의 언론자유를 위해 무엇을 했던가를 따져봤어야 했다. 랭킹 좋아하는 그 수많은 한국의 “랭킹주의자”들은 왜 이런 랭킹은 따지지 않는지 의아할 뿐이다. 한국의 이 초라한 언론자유 성적표를 수신료 문제와 맞물리게 한다면 수신료 거부뿐 아니라 30년간의 수신료도 반환청구해야 할 판이다.

▲ BBC 전경 ⓒ 한수경/마이그린뉴스
1980년대에 이미 케이블과 위성방송의 등장이 선진국들의 미디어 환경을 한번 크게 변화시켰다. 그 당시 위에서도 예를 든 국가들은 일찍이 공영방송과 상업적 민영방송 체제를 확립했다. 즉 독일과 호주 등이 채택하고 있는 방송의 2중 시스템이다. 공영방송은 특히 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국가권력뿐 아니라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 수신료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겐 최우선 과제다. 이 방송의 “독립성”을 위한 법적 제도장치가 유지되기 위해선 재정의 안정적 확보가 필연적이란 것이다. 이것의 사회적 합의가 바로 시청자들이 내는 수신료다. 즉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이지 그 목적자체가 아니다. 또한 방송의 독립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 없이 수신료를 시청자에게 요구할 정당성은 어디에도 없다.

BBC가 공영방송의 광고도 없는 독립적인 방송으로 자주 거론되지만, 이 제도의 한계는 수신료가 10년에 한번씩 갱신되는 왕실 칙허장(Royal Charter)에 의해 결정되며 이 과정에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6년 칙허장 갱신 당시 이라크전쟁 문제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집권당과 불편한 관계였던 BBC는 수신료 10년 연장을 얻어냈지만 정치적 압력을 확연히 느껴야만 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한 제도장치가 확고함에도 국가의 정치적 입김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은 늘 도사리고 있다.

영국에 비해 더욱 독립성을 강조한 독일의 공영방송 구조는 이러한 정치적 입김이 적다. 독일이 공영방송제도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국가로부터의 자유(Staatsfreiheit)”, 즉 “국가로부터의 독립”이다. 수신료는 개인의 방송이용습관에 관계없이 기본법 5조 1항 2문이 보장하는 “방송의 자유” 그 자체를 위해 유지돼야 하는 것으로 징수의 방법도 국가의 영향권 안에 있는 조세가 아닌 수신료징수센터(GEZ: Gebühreneinzugszentrale)에서 독립적으로 실행한다. 이에 덧붙여 수신료 결정과정은 3단계를 거친다. 우선 방송사 자체적으로 보도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고, 김 사장이 부러워하는 독일 공영방송사의 독립된 재정수요 조사위원회(KEF)의 전문적인 심사를 거쳐야 한다. KEF의 수신료 결정은 각 지방정부를 거쳐 의회에 제출되고 입법자의 거부는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특히 국가와 정당의 영향이 배제되어야 한다. (참조: 최우정의 “독일 공영방송에서의 방송수신료의 의미, 기능 그리고 결정과정”)

한국에서 독일의 사례가 의외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다름아닌 수신료 인상과 변화된 수신료체계이다. 특히 미디어 환경변화에 따른 방송의 접근이 가능한 모든 컴퓨터와 핸드폰 등을 소지한, 즉 거의 모든 시민에게 부과되는 시스템이다. 이젠 학생들이 수신료징수센터 GEZ직원에게 했던 “난 TV 없다”며 문 안 열어주기, 또는 “부재중” 같은 따돌리기 수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신료체제를 바탕으로 독일의 공영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KBS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환상적인가?

▲ 출처: 독일 공영방송의 제1방송인 ARD 인터넷포털

하지만 한국국민들의 입장에서 환상적으로 생각해야 할 독일의 진짜 공영방송체제는 정작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번 짧게 소개하겠다.

독일TV 공영방송은 세 구조로 나뉘어 있다. (1) 독일연방 각 지방방송 연합체인 제1방송 ARD, (2) 전국방송인 제2방송 ZDF와 (3) 프랑스,독일연합 문화채널 ARTE와 정치채널 Phoenix 등과 같은 제3방송이다. 특히 모든 각 공영방송은 3개로 분화된 조직구조, 즉 방송위원회(Rundfunkrat), 행정위원회(Verwaltungsrat)와 총관리책임자(Intendanten)로 이루어져 있다. 또 각 방송의 방송위원회는 크기에 따라 16명에서 77명의 회원으로 구성되는데, “공공의 이익”을 위한 프로그램편성에 관한 감독을 한다. 여기엔 사회의 모든 계층, 즉 정당, 종교계, 노조와 노사, 청소년층, 또 방송, 문화, 예술과 학계를 대표하는 이들이 참석한다. 이들은 각 단체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참여해야만 한다.

행정위원회는 프로그램 감독이 아닌 경영감독 및 재정과 발전계획을 책임진다. 그리고 6년 임기의 총관리책임자 Intendant는 각 방송의 총 방송사업과 프로그램편성에 책임이 있다. 공영방송은 모든 시민계층을 위해 기본법 제 5조에서 명시한 방송의 자유를 준수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로 사회의 모든 계층이 공영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음에도 미디어 학자들은 방송에 미치는 정당의 간접적 영향에 대해 늘 문제 삼는다. 또 시민들은 공영방송의 방만운영과 프로그램 질을 꼬집으며 수신료 인상의 정당성을 묻는다.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독일의 공영방송과 수신료 제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의 약자에 대한 책임과 보호다. 이런 이유로 수신료 의무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합의는 이미 이루어져 있으며, 사회의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 즉 장애인 및 망명자에 이르기 까지 수신료를 폭넓게 면제해 주고 있다.

이렇게 독일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핵심들은 제쳐 놓고 KBS는 엉뚱하게도 수신료체제만 모방하려고 한다. 마치 벤츠와 같은 차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모터와 차의 본체는 제쳐두고 바퀴만을 들고 운운하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독일의 공영방송체제에선 KBS 김 사장이나 이사회 같은 정권의 허수아비는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 공영방송 시스템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교육비부터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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