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행오버>가 파란을 일으키고 있을 때, 국내는 왜 개봉을 안 하냐고 그토록 소리쳤건만 끝내 미개봉으로 지나갔었죠. 하는 수 없이 기다리다 지쳐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고는 배가 터져라 웃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고 나니 도대체 왜 개봉을 안 한 건지 더 모르겠더군요. 제 취향에서가 아니라 충분히 우리나라에서도 먹힐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았고, 그보다 더한 영화도 곧잘 개봉했었는데 참 알쏭달쏭합니다. 현재 <행오버2>가 제작 중인 것 같지만 전편이 개봉을 하지 않은 마당에 속편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나마 <듀 데이트>가 개봉했으니 이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 모양인가 보다 했습니다. 감독도 동일인물인 토드 필립스이고 두 명의 주연배우 중 한 사람도 잭 가리피아나키스이니 <행오버>의 대체물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듀 데이트>는 사실 우리에게 꽤 익숙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자 두 명이 주인공인 버디 무비고, 그들이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해프닝을 다룬 것도 흔한 소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토드 필립스의 전작 중에는 아예 <로드 트립>이란 제목을 가진 코미디 영화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어떤 이야기로 어떻게 버무릴 것인가 하는 것인데, 솔직히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두드러지는 요소는 없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피터는 아내의 출산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캐릭터이고, 에단은 배우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가는 괴짜입니다. 이렇듯 부조화가 눈에 훤히 보이는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를테면 버디 무비와 로드 무비의 전형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 데이트>는 "어떻게 버무릴 것인가?"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극의 핵심은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것을 감싸고 있는 테두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유함으로 인해 좀처럼 지루할 틈을 느낄 수 없게 합니다. 특히 미국식 코미디 영화, 이른바 '화장실 유머'에 열광하는 관객이라면 <듀 데이트>에게도 꽤 호감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ㅋㅋ) 녹내장 치료를 위한 것이라며 대마초를 달고 살다가 줄곧 위험천만한 일을 겪는 것이나, 자동차 안에서 단잠을 위한 수단이라며 뻔히 피터가 옆에 있는데 자위를 하는 에단과 그의 개(!)를 보고 있자니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밖에도 에단에게 정내미가 떨어진 피터가 친구를 시켜 복수하는 장면이나 멕시코 국경을 넘었다가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도 <듀 데이트>가 알찬 구성을 이루는 데 한몫 톡톡히 합니다.

특히 <듀 데이트>가 이만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토드 필립스의 연출과 함께 두 주연 배우의 공이 컸습니다. 신사의 이미지가 강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본격 코미디 영화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면서도 파트너와 능수능란한 호흡을 맞추는 관록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잭 가리피아나키스는... 명불허전입니다. 이 친구의 골 때리는 4차원 연기는 단연 <듀 데이트>의 백미입니다. 늘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함에도 잭의 그것은 전혀 지겹지가 않아요. 이번 영화에서 도 어떨 때는 살짝 맛이 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잭 가리피아나키스를 보고 있으면 송새벽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영화에서 항상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는 차이가 꽤 크다고 보거든요. 송새벽도 틀에 박힌 것에만 연연하지 말고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코믹 연기를 시도해야 생명력이 길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토드 필립스는 아무래도 로드 무비에 강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특이한 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로드 트립>도 보면서 아주 배를 잡았었고, <행오버>는 말할 것도 없는데 <듀 데이트>마저 이렇게 만족할 만한 영화를 보이다니... 셋 다 화장실 유머가 돋보이는 영화라서 개인적으론 더 호감이 갑니다. ㅎㅎ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를!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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