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듯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입문 과정에는 자의보다 타의가 크게 작용했다. 정치권의 이런 저런 필요에 호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시골에서 개 키우고 바둑 두며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삶을 뒤로 하고 굳이 정권을 인수한 것은 등을 떠밀리며 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왕 어려운 자리를 맡아야 한다면 무언가를 바꿔보겠다는 소신과 결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이게 무엇이었을지 추측하는게 쉽지 않다. 당장 청문회를 거쳐야 할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개혁적 해법을 주장하는 장관 후보자들에 반대하는 보수야당이라는 구도보다는 떠들썩한 말꼬리 잡기가 주가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무엇을 하기 위한 장관 후보자들인지 의문이다.

일전에도 썼듯 가장 인사의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 것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소신이 분명한 이를 장관으로 임명해 북미 간, 또 남북 간 대화의 동력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SNS ‘막말’과 다운계약서, 회의 참석 등에 대한 거짓 해명 등의 문제가 거론되지만 낙마를 말할 만큼 치명적인 흠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첨예한 쟁점은 정책적 대목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최근 장관 후보자가 소신을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 것은 정책적 토론이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미국이 추가 제재를 계획하고 북한이 개성공단연락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한 것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여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추가 제재를 막았다고 밝히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이게 결정적인 반전의 기회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박지원 의원 등은 북한의 행위에 대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격이라고 평했지만 북한 입장에서 나름대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북한의 제재 우회는 해상에서의 불법 환적 등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조치가 이 대목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미국이 의심을 갖고 있는 배 중에 한국 선적 선박이 포함돼있는 것에 대해 한미가 공동조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해안경비대 함정이 26일부터 28일까지 해경과 연합훈련을 하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군함이 아닌 해안경비대 함정의 주 역할은 당연히 해상에서 이뤄지는 불법행위에 집중된다. 즉, 북한 입장에서 남한과 미국은 한 편인 것이다.

만일 보수야당이 이런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방식으로 정책적 문제제기를 한다면 대북대화론자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답변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미간의 입장 차가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판이지만 실제로는 한미가 제재 유지를 위해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하지만 한미 공조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 이상을 말하기가 어렵다.

24일 오후 국회 국토교통위 회의실에서 관계자가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처지인 것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근 정부는 벤처 육성과 이를 위한 자금조달책을 마련하는 일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한다거나 혁신 금융 비전을 선포한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벤처 창업자의 기업 소유권을 보장해주면서 금융권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4차산업혁명시대라는 흐름을 쫓아가면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절충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마 보수정부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박영선 후보자가 특별히 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보다 앞서 나가는 소신을 주장하지 않는 한 정책적인 어떤 쟁점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나 가업상속공제요건 완화 등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실제 박영선 후보자가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 중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해선 경사노위의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업상속공제 요건완화에 대해선 부적절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는 전제 내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게 확인된다. 보수야당이 특별히 목에 핏대를 세울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의 전선은 정책을 둘러싼 논란보다는 배우자 소득세 납부나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 등 개인적 흠결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개인적 흠결’이 정책적 의문으로 이어지는 후보자도 있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가 그렇다. 최정호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딸 부부에게 증여하고 이들과 임대차계약을 맺어 이사를 하지 않고도 3주택을 2주택으로 줄였다. 그 외 갭투자와 증여세 탈루와 같은 문제도 제기되는 데다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세종시 아파트를 추가 분양받았다는 점까지 보면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의 철학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이런 흠결을 다 사전에 파악하고 장관 후보자들을 내정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자가 장관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경우도 사정은 대개 마찬가지다. 장관이 되어 무엇을 꼭 하겠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냥 하게 됐으니 하겠다는 분위기인데, 그러면서도 다들 이런 저런 개인적 의혹을 한아름씩 떠안고 있다.

이런 판국에도 보궐선거 등의 정치 일정이 있는 상황이라 보수야당이 비합리적 태도로 문제제기를 해올 것이라는 점은 오히려 정권에 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인사에 문제가 없다”고만 말하는 것보다는 어떤 개혁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수야당이 ‘기관단총 경호원’의 사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영남권 민심에 불을 붙이려는 지역주의적 시도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청와대가 비슷한 과거 사례의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넘어 “경호원칙에 따른 것이지만 앞으로는 더 열린 경호를 하겠다”고 했으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통해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도가 없는 것은 집권 3년차이기 때문인가? “그게 무슨 문제냐”는 말보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기회로 청문회 정국을 활용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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