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이제 나이제의 세상이다! <닥터 프리즈너> (3월 20~21일 방송)

첫 등장부터 숨 쉬는 구간을 잊을 정도로 높은 몰입도였다. 나이제(남궁민)의 삐딱하면서도 건조한 말투는 남편의 내연녀를 살인 교사한 재벌가 사모님 오정희(김정난)마저 사로잡았다. 자신을 형집행정지로 빼주겠다며 찾아 온 나이제를 믿지 못해 멀찍이 떨어져 앉아 “식어빠진 초밥이나 씹어먹”던 사모님이 한껏 몸을 앞으로 당겨 “이제부터 내가 뭘 해야 되지?”라며 나이제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기까지 걸린 시간 딱 5분. 나이제가 남궁민의 또 다른 인생 캐릭터가 될 것을 예고하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시간도 역시 5분.

KBS 2TV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KBS2 <닥터 프리즈너> 첫 회에서 나이제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줘야만 했다.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는 인간미 넘치는 의사에서 오로지 복수만을 꿈꾸는 독기 어린 의사로 말이다. 남궁민은 한 시간 안에 흑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아내분이랑 아이를 책임지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이미 싸늘하게 죽은 임산부 앞에서 매스를 달라고 울부짖던 나이제의 처참한 표정이 순식간에 재벌가 사모님을 구워삶는 시니컬한 미소로 변했다. 남궁민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의 극적인 변화를 납득시켰다.

<닥터 프리즈너> 1~4회는 굉장히 속도감 있는 전개였다. 재벌2세 이재환(박은석)의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임산부와 남편 그리고 뱃속의 아이가 죽었고, 얼마 뒤 이재환은 마약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또 다른 재벌가 사모님은 형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일부러 심정지 약까지 복용하며 검사 앞에서 ‘쇼’를 했다. 나이제는 자신의 환자를 죽게 만든 이재환에게 복수하기 위해 재벌가 사모님을 등에 업고 이재환이 수감될 예정인 교도소 의료과장을 자처한다. 많은 사건들이 정신없이 부딪히는 와중에, 오로지 나이제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너무나도 여유롭게 대처했다.

감히 재벌2세의 목숨을 인질로 삼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벌가를 주무르는 데 도가 트인 인물이었다. 나이제는 눈 하나 깜박 안한 채 이재환을 향해 “넌 10분 안에 죽는다”고 경고했다. 목소리 톤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음소거하고 보면 가볍게 날씨 얘기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사실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곧 어레스트 난다”는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가시죠”라며 여유롭게 한 걸음 한 걸음 뗐다. 마치 차 한 잔 하러가는 사람처럼. 모두가 다급한 상황에서 혼자 여유로운 이질감, 그것이 <닥터 프리즈너>를 계속 보게 만드는 남궁민의 저력이었다.

KBS 2TV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외과과장’이라는 출세가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MBC <하얀거탑>의 장준혁과는 분명 다른 캐릭터다. 하지만 매 신마다 화면을 압도하고 모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키를 쥐고 있으며, 의술 실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점에서는 장준혁과 비슷하다. 장준혁의 출세욕만큼이나 강한 나이제의 복수심은 앞으로 <닥터 프리즈너>의 속도에 제동을 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재벌, 그리고 재벌에 빌붙은 자들에게 한 방 먹이는 나이제는 선한 쪽인가, 악한 쪽인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장준혁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래서 더 뻔하지 않은 드라마다. 이제, 나이제의 세상이다.

이 주의 Worst: 이것은 연애인가 예능인가, 노선 불분명한 <호구의 연애> (3월 17일 방송)

MBC 예능프로그램 <호구의 연애>

SBS <짝>이나 채널A <하트시그널> 같은 ‘대놓고 달달한 짝짓기 프로그램’을 피해가려는 것 같았다. 그게 MBC <호구의 연애>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잘생기고 매너 좋은 남자가 아니라 박성광, 양세찬, 허경환, 인피니트 동우, 김민규 등 연애에 서툰 평범한 남자 연예인들을 내세웠다. 그러나 차별점은 거기까지였다.

여자 출연자들은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일반인 여자 출연자들이 늘 그랬듯이, 연예인이거나 연예인 지망생이거나 연예인만큼 유명한 셀럽이었다. 그래서 연애의 진정성을 떠나 출연자체의 진정성부터 의심하게 만들었다. 연애 예능의 핵심은 시청자들이 그들의 관계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인데, <호구의 연애>는 첫 회부터 시청자들이 한 발 물러서서 심판자의 눈으로 여자 출연자들의 진정성을 판단하게 만들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호구의 연애>

스튜디오에서 아홉 남녀들을 지켜보는 참견인들은 남성 출연자들의 ‘최측근’이라고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성 앞에서 하는 행동들을 가감 없이 지적하거나 그들의 실제 모습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역할이어야 하는데, 그냥 그들을 모르는 제3자가 했다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최측근’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스튜디오 토크였다.

게다가 남자 출연자 5명 중 무려 3명이 개그맨이었다. 그것도 실제로 너무 친한. 그래서인지 여성 출연자들과의 케미보다는 그들끼리의 상황극에 빠진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한 남성 출연자가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하면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출연자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과하게 웃고 리액션하는 모습은 마치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를 보는 듯했다. 아무리 대놓고 연애하는 리얼리티 예능이 아니라 동호회를 콘셉트로 한 예능이라 해도 어느 정도의 설렘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호구의 연애>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배려심 많은 국민 남친 캐릭터로 활약했던 박성광은 <호구의 연애>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병풍이었다. 참견인들의 말처럼 누군가 공격해야 매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박성광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제작진의 탓도 크다.

첫날 어색한 만남부터 두 번째 가평 여행까지, 제작진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남녀 출연자들이 어색한 설렘을 느낄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지만 그 설렘이 시청자들에게까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아니, 여성 출연자들에게도 도달하지 않은 듯했다. 청춘 남녀가 한데 어우러지는 동호회가 아니었다. 남자들끼리 떠난 MT에서 옆방 여자들과 합석했으나 남자들은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재밌는데 여자들은 그 흐름에 끼어들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그림, 딱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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