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스터리는 역시나 불가능한 것인가? 즐거운 나의 집이 초반에 주었던 미스터리에 대한 신선하고도 강력한 충격을 더 이상 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유산, 원한, 치정 등 강력 사건의 재료들은 즐나집 안에 유령처럼 맴도는데 그것들이 섞인 결과는 미스터리라는 독주가 아니라 밍밍하고 미지근한 칵테일이 되고 있다. 말하기 꺼려지는 것이지만 두 번씩이나 유괴되고도 멀쩡한 김진서의 아들 민조가 이 드라마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납치에다가 이번에는 어린 병아리의 죽음 그리고 전화로 나지막하게 전달된 “네 아들도 그렇게 될 것이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대단히 싱거웠다. 아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이준희의 말에 정신이 나간 김진서는 모윤희를 찾는다. 친한 강형사가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경찰은 믿지 못한 탓일까? 어쨌든 그런 진서의 모습에서 모윤희는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는 빠른 판단을 하게 된다.
진서는 알아서 성은필 사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고 더 나아가 남편도 포기할 테니 가져가라고 울며불며 소리친다. 그런 진서를 보며 윤희는 내심 만족스러워 하면서도 정작 자기 아버지가 민조를 유괴하지는 않은 척 한다. 그러나 그런 윤희의 태도는 아버지에 대한 딸로서의 옹호가 아니라 단지 자기와 연결된 인물의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뿐이다. 윤희의 아버지에 대한 원한은 아직도 뿌리 깊다.
사건이 미로에 빠져야 그것을 빠져나가기 위한 시청자의 추리와 상상이 가동될 터인데 그것은 젖혀두고 엉뚱한 배경 설명에 빠져서 추리는 런닝머신 위에 올려졌다. 바삐 발은 움직이지만 결코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는 제자리걸음을 요즘 시청자가 가만 이겨낼 리는 없는 일이다. 채널만 돌리면 고현정도 나오고, 월드스타 비와 이나영도 나온다. 그렇게 말없이 채널을 옮기는 사람은 그나마 낫다. 그러지도 못하고 리모컨 못 잡고 답답해하는 시청자에게 이런 답답한 답보상태는 잔인한 일이다.
그런 드라마 답보가 낳은 또 하나의 재앙은 김혜수의 열연마저도 가려버렸다는 점이다. 두 번째 아들의 실종에 미친 듯이 절규하는 진서의 모습은 얼핏 밀양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열연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진서의 모습에 감동받기보다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된 것은 시청자의 잘못이 아니라 작가의 탓이다. 그런 것은 황신혜 또한 마찬가지다. 항상 화나 있고, 항상 소리를 지르다보니 마침내 집까지 찾아온 이준희에 대해서 뱃속에서 끌어올리는 저주와 원망의 발성이 그 예쁜 얼굴에서 나왔음에도 그저 그렇게 지나치게 했을 뿐이다.
그것이 알려지면 집안이 거덜 날 정도라고 했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태산명동서일필이라고 뭔가 있을 것 같다가 결국 별 것 아닌 것이 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의 최종 목적은 성은필 죽음의 진범찾기지 성은필 가문의 비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비밀이 그토록 큰 것이라면 이 드라마의 핵심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에 과연 그토록 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 드라마의 희망이 있다. 김혜수, 황신혜의 연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진해지고 있으며 인물들에 대해서 더는 우려낼 새로운 추억이 남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엉뚱하게도 진서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한소리가 이준희를 만나 김진서에게 새로운 단서를 주게 될지도 모르는 돌발 상황도 생겨났다. 그렇게 된다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게 될 것이다. 실망 속에서도 아직은 기대감이 남아있는 즐나집 제자리걸음만 멈춘다면 분명 더 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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