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지도부가 50% 연동률 적용을 골자로 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의원총회를 거쳐 잠정합의안을 추인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 목소리가 나오면서 당론 채택이 쉽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20일 오전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모습. (연합뉴스)

바른정당 출신 의원 중심으로 준연동형 비례제 패스트트랙 반대

20일 오전 바른미래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당론 채택을 시도했다. 앞서 19일 바른정당 출신 유승민, 유의동, 이혜훈, 정병국, 지상욱, 하태경 의원과 국민의당 출신 김중로, 이언주 의원은 김관영 원내대표에게 선거제도 개혁과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패스트트랙 처리하는 것을 논의하는 의원총회 소집요구서를 전달했다.

오전 9시부터 5시간 가까이 진행된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는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29명 현역 의원 중 민주평화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의원 일부를 제외한 24명의 의원이 참석해 격론을 벌였다. 그러나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지면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유승민, 이혜훈, 이태규, 김중로, 이언주 의원이 의원총회 도중 퇴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률,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 등에 대해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승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거법과 국회법은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다수당 횡포가 심할 때도 꼭 끝까지 최종합의를 통해 하던 게 국회의 오랜 전통"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승민 의원은 "패스트트랙은 결국 숫자로 하는 것"이라며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분리 관련 법은 권력기관이 국민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에서 충분히 안을 내고 패스트트랙에 태울 수 있지만 선거법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선거법이 아무리 좋은 선거법이라도 그건 패스트트랙 하는 건 맞지 않다는 의견을 드렸고 오늘 결론은 못 내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언주 의원은 "공수처법은 북한 국가보위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선거법도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이상한 편법"이라며 "이런 시도 자체가 일종의 우리 당을 와해시키기 위한 민주당의 술책과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결론이 나게 되면 무산되는 것으로 날 것"이라며 "당론 채택 요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중로 의원은 "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를 싫어한다"며 "적어도 2/3 이상이 사활을 걸어야 당론이지, 반쪽 의견만으론 당론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선거제도를 끼워서 무슨 협상을 한다는 건 순수성을 결여했다"며 "민주당 꼼수에 넘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지상욱 의원은 "이거(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분이 정책위의장 하시는 권은희 의원, 또 박주선 전 대표님, 두 분도 계시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당규 54조는 소속 의원들은 주요 정책, 법안 등에 대해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당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지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10명이 준연동형 비례제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당론 채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20일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도중 퇴장한 유승민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 보수통합 대비하나?

그러나 바른미래당 입장에서 선거제도 개혁 없이 다음 총선에 임할 경우 현재 의석을 지킬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현행 선거제도가 거대양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에는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가 중심이 된 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소선거구제는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형 선거제도로 정당에 대한 지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거대양당으로 지지가 쏠리는 현상을 발생시킨다. 실제로 지난해 6월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재보궐선거,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했다.

그럼에도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이 준연동형 비례제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이유가 결국 보수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준연동형 비례제 혹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한 바른미래당 의원 다수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했던 탈당파 의원들이다. 국민의당 출신인 이언주 의원은 독자적 보수 행보를 걷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바른미래당을 향해 던지는 러브콜도 심상치 않다. 20일 오전 자유한국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선거대책 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그동안 최악·희대의 권력 거래, 밀실 야합 선거제 패스트트랙에 한국당은 나홀로 투쟁했다"며 "이런 가운데 다른 야당에서도 조금씩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제 야합으로 만들어진 패스트트랙에 우파 야권이 단결해 좌파 집권 세력 장기 독재 야욕을 막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명령"이라며 "정권 중심으로 똘똘 뭉친 여당과 사분오열 야당 구도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며칠 전 한국당 의원총회 비공개석상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하라는 지시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선거구 획정 문제로 반대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지상욱 의원이 준연동형 비례제 반대 입장을 가졌다고 언급한 박주선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야가 합의한 내용대로 지역구를 225명으로 줄일 경우 선거구당 평균 인구수(2018년 12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 기준)는 23만338명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인구편차 허용한계를 인구비례 2대1까지 적용하고 있으므로, 인구 상한선은 30만7117명, 하한선은 15만3559명이 된다. 20대 총선 당시를 기준으로 박주선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동구남구 을의 인구는 15만528명이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다른 지역구와 조정 가능성이 있단 얘기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첫째로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보수통합에 대비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고, 둘째로 지역구를 줄이다보니 지역구의 이해관계가 걸린 선거구 획정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지금까지 선거법이 게임의 룰인 만큼 합의하지 않고 처리한 전례가 없다는 것도 명분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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