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공언한 대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지역구 정수를 17석 늘리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15일 당론으로 발의했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퇴보시키는 안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그런데 한국당은 이같은 법안 발의의 근거로 비례대표제의 폐단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당사에서 한국당을 제외하고 비례대표제의 폐단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종의 유체이탈화법인 셈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좌파독재 저지, 공수처 반대 등 현안 관련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한국당은 "1963년 비례대표제 도입 후 여러 차례 제도 변화가 있었으나 비례대표제의 장점보다 폐단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며 "비례대표제는 정당제도가 올바로 정립되고 정당의 당원들의 활동이 생활화, 활성화된 경우에 정당민주주의 바탕 위에서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그러나 현재 고정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약해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할 뿐 아니라 직접선거원칙에 반할 우려가 크다"며 "또한 비레대표 후보자 선정과정에서 투명성, 합리성, 공정성 등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고 특히 후보자 선정에 청와대나 당대표의 자의적인 의사가 개입해 적지 않은 폐단이 반복돼 왔다. 이는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따라서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폐지하고, 국민적 요구인 국회의원 정수 축소 이사를 반영해 국회의원 정수를 10% 감축한 270명으로 하되 유권자가 정당의 개입 없이 직접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모든 국회의원을 지역구에서 선출하는 것으로 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의 주장 대로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 과정은 각종 논란을 일으켜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비례대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 후보자 공천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비례대표에 공천의 투명성 문제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또한 한국당이 명분으로 삼은 내용들은 자신들의 과거 행적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13 총선을 복기해보면 민주적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공천으로 문제가 된 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또는 반영을 주장하는 여야4당이 아니라 한국당이다.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지난 4·13 총선 공천은 '친박 공천 학살'로 점철된 바 있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 방식으로 일반국민이 직접 참여해 후보를 선출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추진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소선거구제에 적합한 상향식 공천방식으로 손꼽힌다. 미국은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이 방식을 채택해 정당의 후보를 공천한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친박계는 이한구 전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앞세워 오픈프라이머리를 무산시키고, 비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을 감행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던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현역 의원들이 대거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현역 의원의 경선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공관위에 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한구 전 의원은 재의를 반려했다. 이에 김 대표가 "대구 동구 을(유승민 의원 지역구)에 공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도장'을 찍지 않았다. 옥새파동으로 잘 알려진 친박 공천 학살의 전말이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016년 1월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무수석실 행정관들에게 ▲비박계 현역 의원 공천 배제 ▲비박계 유력 의원들의 경선 참여 기회 박탈을 위한 컷오프를 확대 시행하게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한국당은 "후보자 선정에 청와대나 당대표의 자의적인 의사가 개입해 적지 않는 폐단이 반복돼 왔다"는 것을 비례대표제 폐지의 명분으로 삼았다. 과거 한국당의 행적과 발언을 종합해보면 '우리당이 문제적이어서 선거제도 개혁은 못하겠다'고 자기고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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