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조금 힘겨운 승부를 벌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결과는 금메달이었습니다. 한국 남녀 양궁 대표팀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단체전에서 나란히 중국의 거센 반격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 여자팀은 2차 연장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지막 발에서 윤옥희, 주현정, 기보배가 모두 10-10-10을 성공시키며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냈고, 남자팀도 마지막 엔드 22번째 발까지 뒤지고 있다 23번째 발에서 중국 선수가 6점을 쏘는 실수를 범하며 222-218, 4점 차로 제압하고 역시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한국 남자팀은 지난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8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했고, 여자팀 역시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4연속 우승에 성공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한국팀이 평소만큼 쏜 반면, 상대편 선수들이 그만큼 한국 팀 실력에 버금가는 점수를 쏘다보니 대단한 접전이 펼쳐졌던 것 같습니다. 통상 24발 단체전 경기에서 2-3발 정도는 7-8점을 쏘는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고, 상대팀은 그보다 많이 실수를 범해서 어느 정도 점수차가 난 상황에서 경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만난 중국, 인도 등 상대팀 선수들이 의외로 큰 실수를 범하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승부가 펼쳐졌고, 그야말로 살얼음판 승부에서 경기가 갈려 많은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그동안 훈련해온 담력 훈련 등을 통해 큰 흔들림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10점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남녀 모두 동반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남자 양궁 기대주 김우진 ⓒ연합뉴스
한국 양궁이 30년 가까이 세계 최강 실력을 자랑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한국 양궁을 배우려는 다른 나라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한국 양궁이 오랫동안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향상만큼이나 올림픽 금메달을 딸 만한 새로운 선수들이 잇달아 배출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신궁 계보'라 불릴 만큼, 20년 넘게 족보라 불러도 될 정도의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끊임없이 배출됐고 이 선수들이 그야말로 '전설'에 버금 갈 만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오랫동안 최강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됐다는 얘깁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는 기존 에이스였던 남자 임동현, 여자 윤옥희, 주현정이 아니라 신예급 선수인 남자 김우진, 여자 기보배였습니다. 이들은 단체전에서 막내였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에이스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여주며 신궁 계보를 이을 기대주임을 확인했습니다. 오랫동안 힘든 훈련을 거듭했음에도 큰 실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국제 대회에서 대담한 경기력을 보여준 이들이 없었다면 연속 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남녀 대표팀 통틀어 가장 어린 고교생 궁사 김우진은 웬만한 경험 있는 성인 선수들을 능가하는 수준의 경기력을 펼쳐 주목받았습니다. 이미 예선에서도 합계 1천387점을 쏴 세계 기록을 작성하며 주목받은 김우진은 단체전에서도 중요한 고비마다 10점을 잇달아 쏘며 8발을 쏴 77점을 맞히는 좋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어린 선수의 맹활약에 당황한 중국 선수들은 조금씩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마지막 엔드에서 6점을 쏘는 실수가 나오면서 결국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쳤습니다. 그동안 여자 양궁이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개인전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 단 한 번도 없어 많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김우진의 등장은 남자 양궁 첫 올림픽 금메달을 기대해볼 수 있는 면에서 의미 있는 등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윤옥희-주현정-기보배 ⓒ연합뉴스
이렇게 기술적인 진보 뿐 아니라 경쟁력 있는 선수들의 잇단 등장으로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면서 한국 양궁은 어떤 큰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통상 스포츠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1-2년 정도는 과도기로서 부진을 겪는 경우가 잦은데 자연스럽게 신예들이 등장하고 기존 선수들과 잘 녹아드는 경기를 보여주면서 어떤 큰 문제 한 번 없이 최강 실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습니다.

등록 선수가 1천580명(지난해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은 숫자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꾸준하게 발굴돼서 빠르게 세계적인 선수로 급성장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지도자들의 보이지 않은 노력,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 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기대주를 발굴하지 못해 미래가 불투명한 일부 종목들에 비해 끊임없이 좋은 선수들이 나오는 양궁은 정말 진정한 '모범 종목'이자 '효자 종목'임이 분명합니다.

아직 남녀 개인전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단체전을 통해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그런 반면에 새로운 희망을 또다시 찾으면서 이미 많은 의미와 수확을 얻은 한국 양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선발전을 뚫고 그만큼 경쟁력을 갖춰서 국제 대회에서 당당하게 나서는 신진 선수들의 활약에 한국 양궁의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 희망만 가득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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