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이하 진미위)가 과거 자사의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보도 1400 건을 분석·조사한 결과, "최순실 낙종 및 부실 보도 사태가 KBS의 신뢰도와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고 결론내렸다. 또한 진미위는 '우병우 세월호 수사 외압' 단독 기사를 고의적으로 낙종시키는 등 당시 KBS 보도본부 일부 간부들의 문제적 행태를 다수 확인, 양승동 사장에게 보도본부에 대한 부서 경고를 권고했다.

14일 진미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KBS의 '최순실 국정 농단' 보도 문제점 조사>보고서를 채택·의결했다고 밝혔다. 진미위는 '최순실 낙종 및 부실 보도 사태'와 '우병우 세월호 수사 외압 단독 기사 낙종 사태' 등에서 보도본부 일부 간부들의 문제적 행태를 확인, 사태의 1차적 원인이 이들의 무책임과 무능, 편향성에 있다고 결론냈다.

여의도 KBS 사옥 (KBS)

진미위는 2016년 7월 '미르재단' 의혹이 제기됐지만 KBS가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미위에 따르면 당시 KBS 보도본부는 한겨레 <'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 단독 보도로 최순실 씨의 존재가 수면위로 떠오른 뒤에도 기자들의 취재 필요성 제기를 묵살했다.

한겨레 보도가 있었던 9월 20일 KBS 편집회의에서 기자협회장이 취재 필요성을 제기하자 통합뉴스룸 국장 A씨는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라고 반문하며 이를 묵살했다. 이후 주요 취재 부서를 통해 타사 취재 동향을 파악한 실무팀에서는 관련 T/F 구성 필요성을 건의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고, 10월 5일 열린 공정방송위원회에서도 노조측이 T/F 구성을 재차 요청했지만 KBS 사측은 이를 거부했다는 게 진미위 설명이다.

9월 20일부터 10월 17일 사이 'KBS뉴스9'의 최순실 관련 리포트는 총 16건이다. 그러나 진미위는 주로 정치외교부가 담당한 보도 내용은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여야 공방에 치중되었으며 세부적인 의혹이 취재·보도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의혹 내용만을 별도로 취재해 보도한 리포트는 1건에 불과했다.

2016년 9월 20일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이날 KBS<뉴스9>에 최순실 씨 관련 뉴스는 없었다.

10월 14일에는 담당부서 기자가 '정유라 이화여대 사태' 관련 인터넷 기사를 작성했으나 사회2부장 B씨는 기사 승인 거부를 지시했고, 해당 기사는 송출되지 않았다. 10월 17일 정유라 씨 관련 특혜 의혹을 해명하는 교직원 간담회가 열렸고, 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으나 KBS는 ENG 촬영조차 하지 않았고, 사태가 커지자 하루 늦은 18일 관련 리포트를 제작해 보도했다.

KBS 보도본부가 적극 취재에 나선 시점은 10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혹에 대해 엄정 수사를 지시한 뒤다. 진미위는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라고 발언했던 A 국장이 이 당시 처음으로 적극 취재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KBS는 10월 24일 JTBC 태블릿 PC 보도 다음날 '최순실 T/F'를 구성했다.

A 국장 뿐 아니라 당시 KBS의 보도본부장, 취재주간 등 보도본부 책임자들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취재와 보도에 소극적이거나 반감을 보이는 발언을 했다.

의혹이 제기되던 10월 5일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보도본부장 C 씨는 "야당에서 그것도 국감 발언에서 제기한 내용에 대해서 그걸 온 국민적 의혹이라고 단정을 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니까 T/F를 짜서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좀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D 취재주간은 "반대쪽에서 보면 괴담 수준의 얘기"라며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 측면도 있는 것이다. 심층취재를 안했다는 부분은 저희 취재 역량이 그런 걸 어떡하는가"라고 말했다. 실무팀, 기자협회, 노조 등에서 T/F 구성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이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2016년 10월 14일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KBS 진미위는 주로 정치외교부가 담당한 최순실 게이트 의혹 보도 내용은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여야 공방에 치중되었으며, 세부적인 의혹이 취재·보도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진미위는 '최순실 T/F' 구성 이후에도 관련 보도를 방해하는 당시 KBS 보도본부의 석연치 않은 행태가 있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는 '우병우 세월호 수사 외압' 단독 기사의 낙종 사태다. T/F는 2016년 12월 7일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세월호 수사와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전직 검찰 간부의 실명 폭로를 확보, 기사를 송고했으나 이는 불방됐다. 이후 관련 내용은 12월 16일 SBS가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진미위는 해당 기사 송고 6일 뒤 T/F가 예고없이 전격 해체됐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진미위는 '고영태 녹음 파일' 관련 보도를 통해 '고영태 기획 폭로설'을 뒷받침한 점,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빙망록을 입수하고도 우병우 수석 민간인 사찰 연루 의혹 등 상당수의 아이템이 불방된 점 등을 당시 KBS 보도본부의 문제적 행태로 꼽았다.

진미위는 "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KBS가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건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매우 나쁜 사례로 남았다"면서 " KBS의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실행해 나갈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진미위는 "초대형 사건이 공공연히 벌어져도 취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일선 기자들도 취재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다"며 "일부 간부의 일탈 행위에 책임의 큰 부분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보도 기능의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 점을 모두 설명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이에 진미위는 향후에도 유사한 상황 발생 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요인이 잠재해있다고 판단, 양승동 사장이 직접 보도본부에 부서 경고를 내리고 개선책을 강구하도록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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