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최강 빌런 타노스의 등장으로 지구의 반이 사라졌다. 어벤져스의 전사들 역시 반이 사라졌다. 모두가 힘을 합쳤지만 인피니티 스톤을 끌어 모은 그의 막강한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과연 지구의 운명은, 아니 전 우주의 운명은 이대로 타노스의 손아귀로 넘어갈 것인가? 사라지기 전 닉 퓨리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보낸다. 그 누군가가 바로 캡틴 마블. 영화 <캡틴 마블>은 지구의 가장 긴급한 위기에 왜 캡틴 마블에게 연락을 보내게 되었는가 그 '이유의 역사'를 그린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외계인?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크리족의 전사로 살아가는 비어스(브리 라슨 분). 때때로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이 그녀를 잠 못 이루게 하지만 크리족 최강 부대 스타포스의 일원으로 나서기를 주저치 않는다. 수백만 년 째 크리족과 전투를 벌여왔던 스크럴 족들 가운데 암약했던 스파이를 구출하기 위해 나선 작전, 리더인 욘 로그(주드 로 분)의 지침과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비어스는 자신의 본능적 판단에 따라 스크럴과 대치하다 그만 뜻밖의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우주 최강 크리족의 전사가 되기에는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는 존재, 하지만 전투에 있어 그 누구보다 열혈적인 전사 비어스로부터 시작된다. 과연 비어스는 문제가 있는 것일까?

외계인으로 도착한 행성, 알고 보면 지구에서 그녀는 스크럴을 쫓는 과정에서, 아니 늘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995년의 닉 퓨리를 만나게 된다. 최강 크리족의 전사,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이래 비어스라는 크리족의 전사를 '충동'하는 건 그녀의 기억과 즉각적인 판단이다. 이런 그녀에 대해 크리족은 전사로서의 능력이 미흡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녀가 자신의 귀 뒤에 붙여진 크리족의 낙인을 떼어버리듯 그 '미흡'한 그녀의 특징은 바로 행성 지구에 사는 '인간'의 특성이다.

크리족은 그녀를 판단할 때 그녀가 여자냐 남자냐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전사'로서의 적절함 여부뿐이다. 선배이자 리더인 욘 역시 마찬가지다. 즉, 충동적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흔히 '인간적'이라 하는 그 특성으로 비어스는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을 찾아가고 미 공군 기지에 먼지 쌓인 기록물 속에서 공군 장교 캐럴 댄버스를 찾아낸다.

비행은 평등하다, 하지만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비어스가 찾아낸 과거의 자신은 바로 미 공군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이다. 하지만 그녀가 공군에 소속되어 있던 1989년 아직 미 공군에는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없었다. 이제는 준장이 된 지니 레빗, 그녀가 온갖 차별과 편견과 제약을 뚫고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이 1993년이니 당연히 1989년 캐럴에게 그런 기회가 있을 리가 없다.

여성이 전투기를 몰았던 것이 지니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의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 열사는 조선 총독부와 천황궁을 폭격하겠다며 김구 선생께 비행기를 달라던 최초의 여성 비행사였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의 여성 전투 비행사들은 목재로 만들어진 동체 위에 캔버스 천을 두른 비행기를 몰고 전장에 나섰다. 미국 역시 여성 조종사들이 활약했다.

그러나 여성 조종사들이 한 몫을 했다고 해서 제대로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소련의 여 조종사들은 꼼꼼하고 철저하게 일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정비한 비행기에 대해 남성들은 탐탁지 않아 했다. 심지어 그녀들이 폭탄을 싣고 나선 비행기는 연습용, 낮이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이 비행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들은 '밤의 마녀들'이 되어야 했고, '마녀들'은 쉬이 돌아오지 못했다. 참전한 전쟁에서 자신의 몫을 찾으려 했던 미국의 여성 조종사들에게 주어진 건 보다 많은 남성들이 전장에 나설 수 있도록 후방에서 전투기 이동을 돕는 정도였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2차대전 당시 열악했던 여성 조종사의 지위는 시간이 흘러 달라졌을까? 1993년에서야 지니 레빗이 사상 최초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는 사실, 아니 1993년만이 안다. 우리나라에 도입한 F-35기종에서는 2015년에서야 첫 여성 조종사가 탄생했다. F-35의 첫 여성 조종사가 된 크리스틴 마우 중령의 '비행은 평등하다. 비행기는 조종사의 성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던 소회는 몇십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은 '기회의 평등', 그 멀고도 멀었던 길을 설명한다. 우리나라 역시 2002년에야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캡틴 마블>은 바로 이런, 아직까지도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건 특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흑인의 신화적 서사를 그린 <블랙 팬서>처럼, 또 하나의 '인간 종족'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인간'이다. 크리족에 비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비어스. 하지만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 속 1989년의 캐럴 댄버스는 같은 '인간 종족' 내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그녀의 꿈조차 살리지 못한 채 웃음거리가 되고 배척당했다.

가장 가난한 대륙의 흑인 국가가 세계 최강의 지하자원을 활용하여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되듯이, 1989년의 비행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캐롤은 크리족 '마벨'이었던 로슨 박사의 위험한 비행에 조종간을 잡게 됨으로써 우주 최강의 전사로 거듭난다. 더 이상 전투기가 필요 없는 전사, 그녀를 제약했던 크리족의 딱지마저 떼어버린 크리족 전사를 넘어 우주 최강의 '캡틴 마블'이 된다. 마치 흑인 부족의 왕인 블랙 팬서가 어벤져스 중 최강 전사가 되는 것과 같은 마블 판타지의 이치다.

막강 전사 캡틴 마블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그렇게 지구에서 기회를 잃었던 여성 캐롤이 크리족 마벨 로슨 박사를 통해 체득한 우주의 힘을 통해 캡틴 마블의 시작이 되고, 동시에 우주의 공격에 맞선 쉴드의 시초가 된다. <캡틴 마블>은 <스타워즈> 4,5,6 편 이후에 <에피소드1>을 통해 별들의 전쟁과 그 속에 얽힌 인연 혹은 악연의 시작을 다루듯, 이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통해 젊은 날의 퓨리가 만난 캡틴 마블을 통해 <어벤져스> 그 유래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마치 노아의 홍수처럼 세계의 반과 영웅들의 반을 휩쓸어 버리고 나서야 에덴동산의 전설을 이야기하듯.

동등한 인간으로서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한 여성, 그 여성의 '인간적인 노력'의 성향이 외계의 힘을 얻어 극강의 전사로 거듭한 <캡틴 마블>의 이야기는 그간 마블 시리즈의 히어로들처럼 전형적 성장서사의 원형을 가진다. 그녀를 인정했던 로슨 박사의 죽음, 또한 그녀를 품었던 크리족의 정체를 알고 거침없이 크리족을 배척하며, 자신의 사부인 욘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전사로서의 캡틴 마블은 거침없다.

하지만, 그런 거침없음은 동시에 캡틴 마블의 '인간적 매력'을 반감시킨다. 그간 대부분 마블의 히어로들이 지난한 개인적 서사를 통해 고통 받고 단련 받으며 하나의 전설적 존재로 성장해왔던 것과 달리, 캡틴 마블의 서사는 당대의 '페미니즘'이라는 추세의 무게 때문인지 거침없는 용감함에 방점을 찍는다. 그녀의 과거 동료로 등장하는 마리아 램보와 그녀의 딸 캐릭터 역시 전형적이다.

이는 최강의 히어로의 장점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단점이 되고 만다. 또한 그녀의 거침없는 질주 과정에서 정작 그녀와 애증의 갈등을 일으켜야 할 욘의 캐릭터를 결국 '찌질하다 싶을' 만한 결론으로 이끌면서 <캡틴 마블> 자체의 갈등의 깊이를 얕게 만들어 버리는 것. 이건 캡틴의 막강한 힘으로 인해 싱겁게 끝나버린 전투와 함께 역시 마블 시리즈로서 <캡틴 마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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