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남자 선수들의 스매싱을 그렇게 잘 막아냈는지 많이 놀라고 대단하게 느꼈던 사람들이 많았을 줄로 압니다. 그만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력이 결정적인 순간 빛을 발했고, 결국 그토록 바랐던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효정(삼성전기)이 신백철(한국체대)과 짝을 이뤄 출전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혼합 복식에서 결승에서 중국의 장난-자오윈레이 조를 세트스코어 2-0으로 완파하고 개인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전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에 그쳤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여자 단체전, 복식에서 동메달에 머물러 한풀이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닌가 했지만 스스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경기력을 보여주며 혼합 복식에서 금메달을 드디어 따냈습니다.

하지만 이효정은 이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 선수 은퇴를 선언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효정은 대학원 공부, 결혼, 개인적인 장래 문제 등을 이유로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가지 않고 이번 대회에서 국가대표를 은퇴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한 명의 한국 배드민턴 전설로 남게 됐습니다.

▲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 한국-중국 경기에서 신백철-이효정이 중국 장난-자오윈레이를 상대로 셔틀콕을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이효정은 이번 대회를 오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왼쪽 발목 부상, 어깨 통증 등 잇단 잔부상, 그리고 컨디션 난조로 부진이 이어졌고, 그 부진이 생각보다 오래 가서 2004년부터 짝을 이뤘던 여자 복식 파트너 이경원 대신 신예 김민정과 바꾸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에 열린 코리아오픈에서 이효정을 봤을 때도 대회 초반 탈락하고는 다소 침울한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만큼 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한 부담감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효정은 스스로 강한 의지로 매 대회마다 꾸준하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려 애썼고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세계 정상 자리를 지켜내려 했습니다. 어깨 통증으로 상당히 시련을 겪던 기간에도 책임감 있는 자세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냈고, 우승까지 가는 어려운 과정에서도 군소리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해내며 한국 배드민턴 복식 팀이 국제 대회에서 꾸준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료들을 챙기는 이효정의 모습은 동료들에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신백철과 짝을 이뤄 출전한 혼합 복식이나 김민정과 짝을 이룬 여자 복식, 단체전에 출전한 이효정의 진가는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파트너가 모두 자신보다 경험이 부족하고 어리다보니 경기 내내 흔들리는 상황이 생기면 이를 잡아주는 역할을 잘 해내면서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데 중심 역할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그만큼 이효정을 믿은 신예 선수들은 경기를 펼칠 때마다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했고, 결국 신백철은 첫 금메달을, 김민정은 첫 메달을 획득해낼 수 있었습니다.

▲ 금메달 신백철과 이효정! ⓒ연합뉴스
뭔가를 해야 할 때 확실히 해주는 것도 돋보였습니다. 이효정은 큰 키를 활용한 스매싱, 상대의 빠른 공격을 막아내는 리턴 수비가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보여주면서 팀이 승승장구를 펼치는데 몫을 다했습니다. 특히 혼합 복식에서 중국 선수를 잇달아 꺾는 데는 이효정의 노련한 경기 운영이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분위기를 전환시킬 때, 그리고 굳히기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이효정의 결정적인 플레이가 뒷받침됐습니다. 언니, 누나로서, 또 함께 호흡하는 동료로서 해야 할 것을 해주다보니 당연히 파트너들도 더 좋은 경기력을 펼칠 수 있었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어느 정도 낼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번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를 뛰는 이효정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참 아쉽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습니다. 특히 이용대가 몸을 회복해서 다시 짝을 이뤄 2012년 런던올림픽 2연패 장면을 기대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때나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원숙한 기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한국 배드민턴의 위상을 높인 그녀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을 이뤄놓고 떠나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용대에 대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로 다소 묻힌 감이 없지 않았지만 스스로 다시 조명을 받고 퇴장하는 이 모습만으로도 이효정은 충분히 배드민턴 간판, 전설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고 그래서 '유종의 미'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이효정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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