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하고 만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힘들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시도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있었던 무한도전의 모든 도전 중에서도 가장 골머리를 앓았을 아이템일지도 모르겠네요. 1년 동안 무려 12회에 걸쳐서, 매월 그 달에 걸맞은 각기 다른 컨셉으로 달력에 들어갈 사진촬영을 진행하고 그 속에서 각 멤버별에게도 다른 역할을 부여해서 진행하는 무한도전의 2010년 달력모델 프로젝트는 제작진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은근한 끈기와 집중, 그리고 창조력과 차별화을 요구하는 숙제입니다. 귀찮고, 손이 많이 가고, 엄청난 사전 준비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그 성과는 큰 차이를 보기 힘든 작업이죠.
그런데 정작 계속 이어지는 달력모델 프로젝트를 보면서 저절로 눈이 가는 것은 그들이 수행하는 과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인상적인 시도들도 많았고 그 결과물 역시도 깜짝 놀랄 정도의 멋진 사진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사진 모델로서의 모습이 아니란 것이죠. 오히려 제가 더더욱 재미있게 느끼는 이번 프로젝트의 포인트는 촬영에 임하는 멤버들 본연의 모습, 혹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나 프로그램에 융화되어 가는 과정의 변화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몇 차례 강조한 바가 있지만 저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핵심은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은 1년간 꾸준하게 진행되는, 그리고 그 틀이 비교적 고정되어 있는 달력모델 프로젝트이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몇 달 간의 변화를 짧은 시간에 접하고 있자면 무한도전 내에서의 구도와 영향력, 혹은 그들의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얻은 인한 성장과 차이를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1월만 해도 무한도전의 가장 핵심적인 축이었던 박명수의 침체된 모습을 가을 촬영에서 만난다든지, 초반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길과 하하가 조금씩 무한도전에 녹아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연한 변화는 무도의 최강 콤비로 거듭나고 있는 유재석과 정형돈의 결합입니다. 언제나 박명수에게 고정되어 있던 1인자 유재석의 파트너 자리에 조금씩 정형돈이 끼어들면서 생기는 새로운 경우의 수이죠. 기대에 비해 느린 성장 속도를 보이다가 근래 레슬링 특집을 거치며 미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정형돈의 괄목상대가 만든, 그리고 은근히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만남이 무한도전에 다른 색깔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박명수가 주춤하고,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하하나 길이 아직도 제짝찾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현재로서는 가장 안정적이고 잘 어울리는 콤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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