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마치고 우승을 차지한 뒤 차분한 자세로 들어가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신기록을 달성하며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아무래도 그런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간 걸어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녀의 차분한 우승 세레모니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고 봤습니다. 그만큼 힘든 일도 많았고, 어느 때보다도 고생했지만 베테랑답게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며 2달 전에 잃었던 정상 자리를 되찾는데 성공했습니다.

'로즈란' 장미란(고양시청)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5kg급에서 인상 130kg, 용상 181kg을 들어 올려 합계 311kg으로 중국의 멍수핑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장미란은 지난 2002년, 2006년에 중국 선수에 잇달아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던 한을 또 다른 중국 선수를 상대로 중국에서 보기 좋게 풀어내며 아시안게임 통산 첫 금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멍수핑의 용상 3차 시기 실패로 금메달이 확정된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용상 세계 기록(187kg)을 1kg 경신한 188kg에도 도전장을 던진 장미란은 아쉽게 바벨을 놓쳤지만 후회없이 싸웠다는듯 편안한 표정으로 서서 기도를 올리고, 코치에게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장미란이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역도 75㎏ 이상급 용상 2차시기 때 181kg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장미란이었지만 이번 대회 우승은 그 어떤 우승보다도 값지고 대단했습니다. 아시안게임 개인 첫 금메달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힘든 과정을 잘 극복해내서 따낸 금메달이었기 때문입니다. 잇단 악재 속에서도 장미란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으로 아시안게임을 피땀 흘리며 그야말로 제대로 준비해왔고, 마침내 원했던 결과를 내면서 '인간 승리'의 표상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됐습니다.

지난해까지 장미란은 분명히 승승장구를 펼쳤습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 기록을 작성하며 여자 역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습니다. 특히 딱 1년 전인 지난해 11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인상에서 2위에 올랐지만 용상에서 3차 시기를 187kg을 들어 올려 세계 기록으로 용상, 합계 우승을 차지하며 전무후무한 4연패 달성에 성공, 당시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나 TV로 생중계를 지켜본 국민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장미란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1월, 소속팀이 있는 고양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경미한 허리 통증을 겪은 것을 시작으로 이것이 문제가 돼서 허리디스크가 재발하는 악재를 겪었습니다. 통산 한 시즌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동계 훈련을 철저하게 해야 했고, 김기웅 역도 여자팀 감독도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었는데 부상 여파로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컨디션 난조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며 훈련과 재활을 반복했던 장미란에게 올 시즌 우승은 많이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 9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310kg으로 3위에 올라 아쉽게 5연패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충분히 자신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기량을 갖췄지만 훈련이 부족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아쉬움은 컸습니다. 특히 지난해 적수도 안됐던 중국의 멍수핑에마저 1kg 차이로 져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법도 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아파했을 장미란이었습니다. 훈련량 부족으로 오직 지금까지 해온 감 하나만으로 경기에 나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큰 박수를 받았지만 장미란 입장에서는 성에 안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미란에게는 하나의 목표, 의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세계기록 등을 모두 이루고도 아시아 무대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치고 나면 많이 미련에 남았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장미란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신인의 자세로 피땀을 흘리며 아시안게임에 대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몸상태를 80-90%까지 끌어올리며 아시안게임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과정은 참 힘들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인상에서 멍수핑에 5kg을 뒤져 용상에서마저 멍수핑과 동률을 이룬다면 인상 기록이 그대로 올라가 결국 또 한 번 무릎을 꿇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미란은 몸무게가 멍수핑보다 가벼웠던 만큼 기록보다 순위 싸움에 중점을 둔 지능적인 전략으로 용상 경기에 임했고, 용상 1,2차 시기를 가뿐하게 들어 올리며 멍수핑을 압박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멍수핑은 3차 시기에서 결국 바벨을 들어 올리는데 실패했고, 장미란은 비로소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용상 세계 기록을 도전했지만 클린 동작에서 저크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결국 깔끔하게 이어지지 못하며 세계 기록 달성에는 실패했습니다만, 어쨌든 1년 동안 온갖 고생했던 것들을 훌훌 털고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따며 장미란은 또 한 번 국민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며 다시 시상대 가운데에 우뚝 섰습니다.

워낙 많은 우승을 차지했기에 장미란의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이 좀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번 우승은 충분히 개인적으로나 한국 역도 전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금메달이었습니다. 자칫 노골드로 끝날 뻔 했던 한국 역도에서 홀로 금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하며 자존심을 지켜냈고, 앞서 전한 것처럼 1년간 역경을 딛고 따낸 금메달이어서 그 가치는 어떤 것보다 빛나고 위대했습니다. 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고 피땀흘려 오랫동안 유지하는 장미란은 충분히 박수 받고 영웅 대접을 영원히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앞으로 '마지막 도전'이 될지 모르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힘차게 바벨을 들어 올리고 활짝 웃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지기도 하는데 앞으로의 행보를 또 주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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