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를 쉰 <저널리즘 토크쇼 J>가 3·1절 100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의 친일 뿌리를 찾아 나섰다. 친일언론을 찾자니 공교롭게도 다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들여다보게 됐다. 물론 조선과 동아보다 훨씬 일찍 창간된 대한매일신보(현재의 서울신문)이 있었고 식민시대 통치에 저항보다는 순응 혹은 협력의 역사는 다르다고 할 수 없지만, 해방 이후 반성과 청산에 대해서는 결이 다른 탓에 어쩔 수 없이 조선과 동아의 행적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어 보였다.

우선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언론사가 적지는 않지만 해방 이후 현재까지 명맥을 잇는 언론사는 앞서 거론한 매체들뿐이다. 단순히 명맥을 잇는 수준이 아니라 거대 언론권력으로 성장한 조선과 동아의 친일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여전히 반성할 것이 쌓여있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민족정론지' 조선ㆍ동아 백년의 침묵 편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민족지였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식민지 시대에 한글로 신문을 발간함으로써 우리글과 말을 지켰다는 공적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장부승 교수 역시 그런 부분의 공적을 피력하며 균형 있는 접근을 주장했다.

그러자 KBS 송수진 기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10가지 궤변들을 인용하며, 친일 청산 반대론자들의 대표적인 논리인 ‘공과론’의 허구를 지적했다. 공이 과의 면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과론의 문제는 비단 친일 청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권력자들 특히 경제인들의 재판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해 국민들 복장을 터뜨리는 대목이다. 경제발전에 공헌을 해서 형량을 줄이거나 혹은 풀어준다는 선고가 법도 상식도 파괴한 궤변인 것과 마찬가지로, 친일 전력이 다른 공적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는 없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민족정론지' 조선ㆍ동아 백년의 침묵 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내년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무엇보다 이들의 창간시기가 1920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3·1운동에 놀란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일본총독부가 이들 매체의 창간을 허락한 것 자체가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추론도 가능한 것이다.

동아일보가 한때였지만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1974년 소위 백지광고 사태로 기억되는 유신정권의 언론탄압과 저항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자들은 굴하지 않았고, 시민들은 개인광고를 내는 방법으로 그들의 저항에 동참했다. 당시 동아일보 보는 맛에 산다는 말이 시민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당시 동아일보에 광고 후원을 했던 사연들은 눈물겹고 또 감동스럽기 그지없다.

그 사연 중 하나인 한 50대 노동자의 사연은 조선·동아의 친일 전력을 덮지 못할 이유가 된다. 그는 “동아일보를 위해 성금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 자신을 위해 내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언론의 문제를 따지는 것은 저널리즘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거의 50년 전 평범한 노동자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부끄럽고 숙연해진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민족정론지' 조선ㆍ동아 백년의 침묵 편

그러나 기자와 시민들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신정권의 언론 길들이기에 투항한 동아일보 사측은 기자들을 대량 해고했으며, 한국 언론의 자랑이자 국민의 긍지였던 동아일보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주 체제의 언론은 이렇게 쉽게 공정언론의 기치를 꺾게 되는 것이다. 다만 동아의 투쟁에 대한 기억이 사실을 왜곡하는 효과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동아도, 조선도 이렇게 저항했다는 기록은 없다. 동아일보의 백기투항은 일제 강점기 언론의 생존방식을 동시에 설명한다. 따지자면 공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를 숨긴 공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아마도 내년이면 조선과 동아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자사들의 공적을 포장하기 위해 엄청난 물량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이후 이어진 독재시대를 이렇다 할 저항과 투쟁 없이 거대 언론 권력으로 성장한 언론사라는 사실은 이들의 정당성을 흔들 수밖에 없다.

사실 조선·동아의 친일논란은 매우 신선한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공영방송 KBS가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한 것은 매우 참신하고, 파격적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마련한 ‘민족지, 백년의 침묵’이 주는 의미는 크다. 제목은 점잖지만 내용은 신랄하다. 본방을 놓쳤다면 다시보기라도 꼭 챙기기를 권하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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