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우린 이명박근혜 시대를 살며 언론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경험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 하지만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들이 많다.

2014년 4월 16일은 대한민국 언론 대부분이 스스로 사망선고를 한 날이다. 오보가 양산되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들,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언론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홍가혜는 당시 민간 잠수사로 팽목항에 모여든 수많은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난 후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언론들 모두 홍가혜에 달려들어 물어뜯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KBS 1TV <거리의 만찬> ‘언론에 당해봤어?’ 편

정부와 해경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문제였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현장은 엉망이었고,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이들은 정부와 해경의 수수방관의 결과였다. 실제 현장에서 느끼고 들었던 이야기를 인터뷰한 것이 전부였지만, 홍가혜는 세월 참사 당시 가장 핫한 존재가 되었다.

해경을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빠른 조치였다. 박근혜 정권은 홍가혜를 본보기 삼아 자신들에게 반하는 발언을 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스릴지 보여준 셈이다. 또한 언론은 국가 권력의 횡포에 대해 말하기보다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삼성반도체에서 벌어진 백혈병 사건은 최근 합의를 통해 사과를 받아내며 종료되었다.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만든 '반올림'은 무려 11년 동안 세상과 싸워 결국 이겼다. 삼성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삼성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힘겨운 일인지 당사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KBS 1TV <거리의 만찬> ‘언론에 당해봤어?’ 편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백혈병에 걸렸다. 당연히 공장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일을 한 노동자들이 같은 병에 걸렸다면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곳의 주인이 삼성일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아무리 싸우려 해도 언론도 법도 피해자의 편은 아니었다.

사실을 말해도 왜곡해 삼성의 편이 되는 언론의 행태는 경악스럽다. 악의적인 보도로 '반올림'을 사악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일상이었다. 오직 돈독에 오른 피해자 가족들이 삼성을 괴롭히고 있다는 식의 보도는 익숙하다. '세월호 참사'를 전하는 언론의 시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레임 조작은 여전히 언론인들 사이에 남겨져 있다.

23살 어린 딸을 잃은 아버지는 결심했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딸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말이다. 삼성 관계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말도 안 되는 거금으로 회유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거액 앞에서도 아버지는 고인이 된 딸과 약속을 지켰다.

삼성과 싸움에서 이겼다. 단순한 삼성과의 싸움이 아니라 언론들과 싸움에서도 '반올림'은 이겼다. 삼성 본사 앞에서 문제해결을 외쳐도 언론은 피해자 가족들이 아닌 삼성의 입장만 전달했다. 현재도 일부 언론들의 행태를 보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특정 세력의 이익에만 앞장서는 자들을 더는 언론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KBS 1TV <거리의 만찬> ‘언론에 당해봤어?’ 편

언론의 생태계가 바뀌며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형태가 달라졌다고 본질마저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의 역할은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변할 수 없다. 그 기본에서 벗어나는 순간 언론은 더는 언론일 수 없다. 어뷰징을 전문으로 하며 비판 없이 기사만 쏟아 내는 언론은 언론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순간 언론의 생명은 끝이다. 진실을 밝히고 세상에 알리는 일에 두려움을 가져서도 안 된다. <거리의 만찬>은 홍가혜 씨와 반올림 사례를 통해 언론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수많은 문제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언론이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권력의 감시꾼이 되어야 할 그들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그런 경험을 하고서도 여전히 언론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을 찾는 것이 힘겨워진 시대, 진짜 언론의 역할은 그만큼 더 절실해지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