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학회 주최 토론회(새정부의 미디어정책 과제)에서는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신문과 방송 업계 사정에 상당히 밝은 한 중견 신문방송학 교수가 새 정부의 지상파방송 정책에 관한 주제발표를 하면서, 한나라당의 언론정책 수립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정병국 의원 등의 여러 차례에 걸친 MBC 민영화 방침 발언을 ‘개인의견’으로, 이를 보도한 조중동 등의 보도를 ‘추측성 보도’라고 주장해 일부 참석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MBC 민영화 방침과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개인의견’으로 치부한 황근 교수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황근 교수는 발제를 시작하며, “우리나라에서 개혁이 안되는 분야가 네 곳이 있다고 한다. 교육개혁, 종교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언론개혁이라고 한다. 네 분야 모두가 이념과 관련된 분야이기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 16일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새 정부의 지상파방송 정책방향' 모색 토론회.ⓒ곽상아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의 이어지는 말 :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언론정책과 관련된 여러 내용들이 보도되고 있다. 관련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이해당사자들이 보도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 입장에서는) 보도 내용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지금까지 인수위 주변에서 흘러나온 보도 내용 중에서 인수위가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은 없다. 전부 (인수위나 이명박 당선자 주위의) 개인적 의견이거나 추측성 기사였다.”

정병국 의원이나 이재웅 의원 등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의 언론정책을 입안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측근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당하게(?) 밝혀 온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내지 겸영 허용 방침과 MBC 민영화 방침을 ‘개인적 의견이나 추측성 기사’로 변질시킨 것이다. 그의 용기가 놀라웠다.

정병국 의원이 누구인가? 그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홍보기획 책임자로서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고 한나라당의 언론대책특위 위원장까지 겸하고 있는, 사실상의 언론정책 수립 실무 책임자이다.

그를 만나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들어 본 기자는 그가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과 MBC의 주식 70%를 가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약칭 방문진)의 해체와 MBC의 민영화 방침을 언급할 때 얼마나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는지 정확히 안다.

정 의원은 지난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기 1년여 전에 이미 언론노조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방문진의 해체와 MBC의 민영화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밝힌 바 있다.

그런 그의 발언을 황 교수가 ‘개인의견’으로 치부해 버렸으니 만약 정 의원이 토론회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난 10년 간 방송을 ‘정치적으로’ 공격한 세력은 한나라당과 조중동

황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을 이용해 왔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정권 10년 동안, 그 중에서 특히 참여정부 5년 동안은 방송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가 방송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 왔느냐에 대해서는 각자 선 위치에 따라 평가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지상파 방송을 놓고 끊임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정쟁의 도구로 삼아 공격해 온 세력은 바로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이 주축이 된 수구반동복합체였다.

한나라당과 족벌신문 이 두 그룹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관계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지난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 대표적인 세 족벌신문 모두 혹은 일부는 한나라당의 비공식 당 기관지 혹은 사실상 ‘비공식 선거운동본부’ 역할을 해 온 것이다.

▲ 대통합민주신당 정청래 의원 ⓒ곽상아
지난 1997년과 2002년 두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않고 KBS와 MBC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에다 돌리기 일쑤였다.

조선 동아 중앙 등 세 족벌신문은 신문 사업만으로 미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지상파) 방송 진출에서 찾기 위해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가 절실했다. 대선 이후 이 족벌신문들의 보도 행태도 본질적으로 이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배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발제자 황근 교수는 지상파 방송의 진입장벽 완화를 특유의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여 강조했다. 먼저 초강수를 던져놓고 한발 빼는 노회한 이명박 당선자 측근들이 듣고 싶었을 법한 논지의 핵심이었다. 물론, 황 교수는 지상파 방송 정책을 정치와 정쟁의 수단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대통합민주신당 정청래 의원은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자 캠프가 보여주고 있는 언론통제 정책과 기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어 언론노조 MBC 본부 박성제 위원장은 MBC 민영화의 부당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하며, “만약 이명박 정부가 MBC 민영화를 정략적 차원에서 밀어붙이면, MBC의 기자와 PD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이명박 정권과 한판 싸움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정토론이 끝나고 황 교수가 발제자로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짤막하게 정리하는 발언을 했다.

“KBS와 MBC의 가장 큰 비극은 80년대부터 싸워서 쟁취한 것을 시청자들에게 돌려준 것이 없다. 20년 이상 순이익을 내면서 시청자에게 돌려준 것이 없다.”

방송이 프로그램 말고 다른 방법으로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게 있는가? 설마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돈을 돌려달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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