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실이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서 잊지 못할 굴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 후배 연예인에게 <세바퀴> 전화연결에 응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매니저에게 물어봐야 한다며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살면서 후배한테 그런 굴욕을 당해본 건 처음"이라며 "어떤 배우도 내 부탁에 그런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 ...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 몇 달이 지났는데도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게다가 “그 여자 후배는 30대 초반의 잘 나가는 연예인으로 광고에도 많이 나오고 예능으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건 심각한 실언이다. 연예인은 남을 높이고 배려하는 구도를 보여줘야지, 자신이 높아지는 구도를 보여주면 안 된다. 그때 돌아올 것은 대중의 비호감뿐이다.

강호동은 수시로 장동건에게 자신의 프로그램에 한번만 나와 달라고 애걸복걸을 한다. 강호동은 현재 예능계의 1인자다. 그가 뭐가 부족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동은 언제나 읍소를 한다.

만약 강호동이 자신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장동건이 자기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다며, 건방지다, 나의 굴욕이다, 기분이 나빴다, 감히 내 부탁을 무시하다니,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국민MC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1인자이지만 언제나 남 아래에 선다. 바로 그렇게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대중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부탁을 들어주거나 자기 프로그램에 출연해주면 정말 감사한 일이고,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출연을 원할 법한 <1박2일>이나 <무릎팍도사>를 진행하면서도 강호동은 언제나 게스트에게 어려운 걸음을 했다며 황송해한다.

이번에 기사화된 이경실의 발언은 거꾸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스스로 대중의 사랑을 밀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대중은 권위의식을 싫어한다. 더군다나 대중에게 서비스하는 직종인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권위나 권력을 내세우는 건 심각한 실책이다.

전화연결도 엄연히 방송출연이다. 매니저와 상의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개인적인 이유에서든 껄끄러워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전화연결에 응해주는 사람에게 감사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그러려니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경실은 응해주는 사람은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여기에선 자신의 권위의식과 인기 프로그램인 <세바퀴>의 권위의식이 동시에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와 <세바퀴>의 부탁인데도 감히 거절해?’라는 소리가 들리는 구도인 것이다.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다. 이경실이 너무 경솔했다.

더 문제는 그녀가 “그 여자 후배는 30대 초반의 잘 나가는 연예인으로 광고에도 많이 나오고 예능으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까지 말한 대목에 있다.

요즘 네티즌수사대의 ‘과도한’ 능력과 정열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연예인들은 누구보다도 거기에서 공포를 느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경실의 발언은 자기 후배를 넌지시 지목하며 네티즌수사대를 선동한 것처럼 느껴진다.

좋은 이야기, 선행 미담이야 얼마든지 타인의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조차 당사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다. 안 좋은 이야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건방진 태도’로 찍히면 네티즌에게 융단폭격을 당한다. 그렇게 위험한 사안이라면 더더욱이나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경실은 굳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사람에 대한 단서를 은근히 제시하기까지 했으니 정말 안타까운 실언이다.

요즘 과장되게 속을 터놓으며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토크쇼가 유행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타인의 인권을 위해서도 말을 가려서 할 필요가 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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