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가 과거 KBS에서 불거졌던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논란이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보고서를 의결했다고 6일 발표했다. 진미위는 2008년 이병순 사장 취임, 2009년 김인규 사장 취임 시점부터 블랙·화이트리스트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출연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출연 여부가 결정되었던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2008년 9월 17일 대규모 인사 직후 '블랙리스트' 작동

진미위는 이병순 사장 취임 직후인 2008년 9월 17일 대규모 인사 직후 블랙리스트 사태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당시 경영진은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반대했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사원행동' 참가자 52명에 대한 징벌적 성격의 대규모 전보와 정치적 의도에 의한 부당인사를 자행하였고, 이 같은 상황 직후 블랙리스트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는 게 진미위의 판단이다.

진미위는 2008년 상반기 '라디오정보센터' 생방송 중 KBS 간부 출신이자 당시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했던 인사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내용이 편파적이라고 항의, 그 해 9월 17일 인사로 해당 PD가 전보되고 곧바로 작가와 고정출연자 3명이 모두 교체된 사건을 예로 들었다.

KBS에서는 2008년 9월 22일 1라디오 '문화포커스'에 출연하던 진중권 씨가 갑자기 하차한 데 이어 TV와 라디오에서 윤도현, 정관용, 유창선 등이 대거 교체된 바 있다.

여의도 KBS 사옥 (KBS)

■ 2009년 김인규 사장 취임 후 '화이트리스트' 위력… 외주화도 한 방편

진미위는 2009년 11월 MB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의 취임 이후 상부의 일방적 지시에 의한 전·현직 정치인과 사장 지인의 특혜성 방송 출연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이다.

진미위는 이 시기 KBS의 출연자 섭외 원칙이 크게 흔들렸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출연자 선정은 제작진 회의와 책임자 논의 절차를 거치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절차 없이 제작진을 압박하거나 상명하달식으로 부당하게 출연을 지시하는 경우, 즉 화이트리스트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진미위에 따르면 김인규 사장 취임 직후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사랑의 리퀘스트', '콘서트 7080' 등에, 윤상현 의원이 '사랑의 리퀘스트'에, 김문수 경기지사와 정진석 의원 등 당시 친여권 인사들이 '설특집 2010 명사 스페셜'에 출연해 논란을 빚었다.

특히 '아침마당'의 '화요초대석' 코너는 화이트리스트 작동의 장이었다. 진미위가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3년 여 간의 출연자를 조사한 결과 상부의 일방적 지시에 의해 출연한 전·현직 정치인은 모두 19명이었다. 또한 청와대 관계자가 5명, 친여권 정부 부처장이 3명, 기관장이 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인의 경우 여당 정치인이 16명, 여당 정치인과 공동출연한 야당 정치인이 2명, 기타 1명 등으로 나타났다.

2010년 1월 25일에는 엄기영 전 MBC 사장이 강원도지사 출마가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자격으로 출연했고, 2016년 6월 21일에는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가 출연했다. 제작진 및 책임 프로듀서의 반대가 있었지만 출연은 강행됐다.

제작진의 반발이 일자 당시 KBS가 프로그램 외주화를 통한 화이트리스트를 관철하려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2010년 7월 '아침마당-화요초대석'코너가 외주화 되는데, 이후 무분별한 출연 특혜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게 진미위 조사 결과다. 이 시기 안상수 인천시장, 정운천 농림부 장관,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등이 모두 상부의 지시에 의해 출연이 결정됐다.

아울러 진미위 조사 과정에서는 '아침마당-화요초대석'의 외주화는 당시 길환영 제작본부장의 지시라는 진술이 나왔다. 진미위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4대강 이포보 농성 등 시사현안을 적극 보도해 호평을 받았던 '생생정보통-시선600' 코너가 2011년 외주 전환과 함께 폐지된 것도 길환영 부사장의 지시였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진미위는 "길환영 씨는 본부장, 부사장 사장으로 있을 때 프로그램 전체나 부분을 외주로 전환해 통제를 강화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비교적 최근 사례도 있다. KBS는 2017년 1월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에 대해 특정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한다는 이유로 '아침마당' 섭외를 보류했는데, 이 역시 관련 사규나 전례에 비춰봤을 때 부당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KBS는 당시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의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선거기간 중 특정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을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진미위는 "선거와 관련 없는 교양 프로그램의 출연금지가 의무 사항이라 볼 수 없고, 설사 이 조항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당시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결정과 대선 실시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선거기간'에도 해당되지 않아 출연을 막을 근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KBS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자문위원으로 선정된 배우 최불암 씨의 '한국인의 밥상' 출연을 허용했다. '대선 캠프에 자문위원 등 이름을 올리는 수준의 참여에 대해서는 교양,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진행이나 출연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인데, 이 원칙은 황 씨에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게 진미위 설명이다.

진미위는 이 밖에도 환완상 전 부총리의 라디오 녹화 당일 출연 취소 사태, 고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와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파일럿 프로그램들의 정규편성 무산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블랙리스트 사건들의 경우 상당수가 청와대, 국정원 등 외부 정치권력의 압력과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가 밝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9월 국정원 개혁위원회‘ MB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퇴출 건’조사 결과 발표, 2019년 2월 27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백서 발표 등으로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