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시작된 죽음의 무도는 이번에는 소피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도수와 윤형사의 아름다워서 슬플 수밖에 없는 사랑은 그들의 운명 역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게 할 뿐입니다. 자신을 옥죄고 들어오는 이들로 인해 조바심이 난 양회장의 폭주는 더 많은 죽음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정말 좋은 사람인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직감뿐입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그림자마저 가까워지는 그들에게 믿음이란 가장 힘겨운 실험대일 뿐입니다. 만질 수 없는 사랑 같았던 도수를 품에 안은 윤형사는 그래서 슬픕니다.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그녀를 슬프게 만들 뿐입니다.

믿음이라는 기본적인 틀 속에서 여전히 서로를 실험하는 지우와 진이 역시 혼란과 혼돈을 지속적으로 경험합니다. 카이를 사랑하는 소피와 그녀를 단순한 비서로만 취급하는 카이 사이의 믿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양회장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한 그녀를 마냥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나까무라 황과 제임스 봉 사이에도 동일한 목적이 있지만 그 목표가 같아 서로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눈앞에 엄청난 금괴가 놓여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할 뿐 동료의식도 그 어떤 가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수가 가지고 있는 금괴를 탈취하기 위한 나까무라의 작전은 진행되고 그렇게 시작된 비즈니스 파티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냅니다. 철저하게 준비한 나까무라와 제임스는 금고 앞에 설 수 있었지만 정작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호원들의 총구였지요.

나까무라팀보다 현명했던 지우는 금괴가 아닌 도수의 차량 안에 금괴가 숨겨져 있음을 알고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금괴를 차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소피의 도움으로 금괴를 찾은 그들은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금괴는 또 다른 논란만 키울 뿐이었습니다.

돈보다 사랑을 택한 소피에게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의 그림자였습니다. 엄청난 양의 금괴를 건네주고 진이가 더 이상 카이 곁에 머물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자신을 해고한 카이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남기를 원하는 그녀는 카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리게 됩니다.

살인이 세상에서 가장 쉽다는 킬러는 카이를 죽이러 그의 숙소로 향합니다. 그를 막아서는 소피를 망설임 없이 제거해버리는 그의 모습은 잔혹함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를 통해 권력을 쥔 몇몇 권력자의 모습을 닮은 양회장과 킬러와의 대화는 우리 현대사를 피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독재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자신의 앞을 막는 모든 이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죽여 버리는 잔인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독재자의 잔상을 보는 듯해 씁쓸하기만 합니다.

'복수는 나쁜 것이다, 복수가 아닌 용서가 곧 선한 것이다'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지우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진이 : 내가 좋은 사람이야?
지우 : 복수하려고 하잖아. 아닌 척 못 살고 네 일 아니어도 외면 안 하고
진이 : 용서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잖아?
지우 : '코란 17장 33절을 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살해하지 말라. 하느님께서 금하셨노라. 부당하게 살해된 자가 있다면 하느님께서 그 보호자에게 권리를 부여하노라'라는 말이 있어. 넌 복수할 권리가 있어. 세상에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야.

과연 용서가 좋은 것일까요? 복수가 좋은 것일까요? 상황에 따라 복수보다 용서가 아름다울 수도 있고 복수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들에 용서만 존재한다면? 혹은 복수만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혼란 그 자체이겠지요.

지우는 부당함에 맞서는 복수와 그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복수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부당하게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이에 대한 복수는 정당하며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이기에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겠지요.

주어진 권력을 개인을 위한 탐욕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복수는 정당한 것일 겁니다. 부당하게 다수를 죽음으로 이끈 이들에게 용서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침묵만이 답이 아님을, 희생된 그들을 위해 복수를 하는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 책임, 미래'
"기억하고 책임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

진이와 지우가 금괴를 어떻게 보관할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책임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과연 우리 사회는 기억하고 있을까요? 과거의 잘못을 책임지고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못하고 있기에 미래가 어둡게 보일 뿐입니다.

<도망자>는 이야기 속에 우리 사회의 현대사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시청률이 아쉽기는 하지만 부당한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이들의 진실 찾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롭기만 합니다. 과연 그들은 '기억, 책임, 미래'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복수는 가능한 것일까요?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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