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실패, 좌절을 맛본 뒤에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에게 쏟아진 비난은 엄청났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얘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게으른 천재'였습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다보니 게을러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박태환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을 달성한 뒤에 각종 방송 CF, 화보 촬영 등을 하면서 자기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도마에 올랐었고, 특히 세계선수권 대회 기간 중에 화보를 찍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비판, 비난은 봇물 터지듯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 박태환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낮은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환골탈태한 박태환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야말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수영 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잇달아 선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자유형 2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하고, 400m에서 300m까지 세계기록을 작성했는가 하면 경험이 많이 부족한 100m에서도 막판 스퍼트로 5위에서 1위로 치고 올라가는 괴력을 발휘하며 '가볍게' 3관왕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육상으로 치면 우사인 볼트가 100m뿐 아니라 1600m 중거리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는 얘긴데 지금까지 거둔 성과만 놓고 보면 참 대단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이 피나는 노력과 눈물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것에서 더욱 값지고 눈부십니다.

▲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화려하게 돌아온 마린보이 박태환 ⓒ연합뉴스
사실 박태환은 지난해 부진 이후 수영을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고, 결국 조용하게 재기를 꿈꾸며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물안경을 쓴 눈 주위만 하얗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가 더운 땡볕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짐작케 합니다.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결국 박태환은 지난 8월에 열린 팬퍼시픽 대회에서 자유형 400m 1위, 200m 2위에 오르며 재기했고,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베이징올림픽 이전의 '올림픽 영웅'으로 다시 거듭났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꾸준하게 좋은 성과를 내서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섰던 호주 맬버른 세계선수권,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이 더욱 값지고 의미 있으면서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만큼 그가 마음고생을 했고, 모든 타이틀을 벗어던지면서까지 노력해서 다시 찾은 타이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대견하고 멋져 보이는 박태환입니다.

박태환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감당해야 했던 부담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다시 타이틀을 찾아야 한다는 것, 가능한 많은 종목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실패 이후 준비과정에서 보인 박태환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 보였습니다. 세계 정상을 이미 밟아본 만큼 이제는 좀 더 수영을 즐기면서 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박태환의 영법은 이전보다 더 깔끔해졌고, 예선에서 여유를 보여줄 만큼 한결 편한 레이스 운영을 펼쳤습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다보니 표정이나 경기 자세도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라이벌은 없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던 약속도 지켜낸 박태환은 그렇게 스스로 오랫동안 이어질 뻔한 슬럼프를 보기 좋게 극복해내면서 다시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박태환에게 목표가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올 한 해 개인적인 큰 목표를 달성한 박태환에게 남은 것은 바로 내년 상하이 세계선수권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 때 빼앗겼던 타이틀을 되찾는 것, 그리고 런던올림픽에서 2회 연속 수영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일 겁니다. 그보다는 더욱 자신 있는 영법으로 내친김에 세계 기록에도 도전장을 던지려 할 것입니다. 전신수영복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서구 선수들의 기록마저 깬다면 박태환은 그야말로 '수영의 진짜 전설'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마린보이의 행보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되고 주목됩니다.

그야말로 노력으로 빚어낸 3개의 금메달이 어느 것보다 값지고, 그의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여서 참 뿌듯했던 '쾌거 중에 쾌거'였습니다. 큰 박수를 보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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