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 여진으로 가요계는 물론이고 연예계 전반을 흔들고 있는 슈퍼스타K 시즌2의 수혜자는 무수히 많습니다. 잘나가는 아이돌들을 모두 뿌리치고 음원 순위 정상의 위엄을 뽐내고 있는 우승자 허각이나 가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슈퍼스타로서의 잠재력을 기대하게 하는 준우승자 존박, 장재인이나 강승윤을 비롯해 가수로서의 미래가 기대되는 다른 참가자들처럼 많은 이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되었고 자신의 길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더 중요한, 즐거운 기다림을 선물해준 재능들이죠.

그리고 다른 한편에 프로그램의 참여로 새로운 반등의 기회를, 의외의 재발견을 보여준 이들도 있습니다. 60초의 사나이로 MC로서 진행능력을 재인정 받으며 공중파로 다시금 재기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김성주나 따스한 감성을 발산하며 심사위원 한자리를 차지했던 엄정화, 시즌1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무게감을 다시 보여준 이승철처럼 말이죠.(물론 그는 음주운전이라는 어리석은 실수로 기껏 쌓아놓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다시 까먹어 버렸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수혜자는 심사위원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준 윤종신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겁니다. 지난 시즌1에서도 그랬었지만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뮤지션으로서의 그의 역량과 달변가로서의 재능을 뽐내게 해주는 가장 적합한 무대였으니까요. 슈퍼스타K의 성공은 그에게 또 다른 전성기를 알리는 기분 좋은 신호탄이었어요.

각종 기사에 윤종신의 평가나 충고가 여전히 화제가 되는 것도 그렇고, 강심장도 그렇고, 이전의 그가 진행하는 비틀즈코드에서도 그렇고, 이제 막 방송활동을 시작하는 새내기 가수들인 슈퍼스타K의 재능들이 윤종신과 함께, 혹은 의지해서 같이 출연하는 모습이 많이 포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그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이들의 어색함을 자연스럽게 보듬어주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적합하게 가다듬어주는 대부의 역할에는 자신들도 예능 출연이 어색하거나 꺼려하는 이승철이나 엄정화보다는 역시 윤종신이 제격이거든요. 실제로 이번 주 강심장에서도 그의 모습은 심사위원 때와는 전혀 다른, 격이 없고 편안한 선배로서 이들을 이끌어주는 노련함이 빛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화제의 두 남자, 허각과 존박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한 그가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말한 내용은 그런 인기, 대중들의 호의적인 평가 앞에서 냉정하게 자신을 내려놓는, 콤플렉스 덩어리인 부족한 재능의 실토였습니다. 데뷔 때부터 자신은 과대평가를 받아왔다는, 지금의 열광과 환호 역시도 지나친 포장의 결과라며 주위의 평가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허상을 경계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죠. 이전의 강심장을 스쳐갔던 어떤 사람들의 말보다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진솔한 고백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처럼 윤종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에서, 혹은 맨 앞자리에서 한 분야를 호령했던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던 사람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의 앞에는 무수히 많은 천재,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뒤늦게 진출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반짝이는 재능들의 멘트를 주워 먹으며 편승한다는 귀여운 비꼼을 받으면서 3인자의 위치에 만족했었죠. 윤종신에게서 최고, 정상, 1인자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에요. 언제나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야만 했던 자신이 언제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고백은 거짓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윤종신은 그런 눈부신 재능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성실함,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그와 함께 출발했던, 혹은 그의 활동 초기에 같이 활동했던 이들 중에서 아직도 꾸준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앨범을 발매하고, 후배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에게 열등감을 안겨주던 015B의 주축들은 가끔씩 반가운 활동 재개와 침묵을 반복하고 있고, 김현철, 정재형, 유영석 같이 쟁쟁하던 동년배 동료들의 활동도 그의 꾸준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유행에 따라 부침이 심한 예능 프로그램의 물갈이 와중에도 윤종신의 이름은 매번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단골 MC, 패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20년의 활동 동안 윤종신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빼어난 가사를 자랑하는 자신만의 색깔을 확고하게 가요계 한편에 마련해 놓았고, 윤종신 특유의 개그 코드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이 그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어요. 또는 개미와 배짱이의 비유를 몸소 보여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스스로를 열등생이라고 자처하지만 정말로 모범적인 열등생. 그가 스스로를 거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겸손함이에요. 윤종신은 좀 더 평가받고 존중받아도 되는, 이제야 그 진가가 인정받는 것뿐입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슈퍼스타K의 후배들에게 많은 롤모델들을 찾아내어 충고하고 비교하기도 하지만 가장 본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심사위원이자 멘토, 모범적인 열등생 윤종신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아닐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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