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낙관했는데 협상이 결렬로 끝나 충격이 큰 듯 하다. 북한의 비핵화 달성과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기로에 섰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대북제재의 완전 해제를 요구했지만 이미 자신들이 핵물질 생산 시설 등을 추가로 파악한 상태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회담 결렬 선언 직후 이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북한의 주장은 다르다. 1일 새벽 기자회견을 연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미국의 설명을 사실상 전면반박했다. 자신들이 제안한 것은 영변 핵 시설 완전 폐기와 추가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 중단의 문서화 등이었으며 ‘안전보장’ 관련 조치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요구하지 않고 대신 일부 제재완화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부 제재완화를 받아내기 위해 기존의 예상보다 폭이 큰 비핵화 조치를 수용하려 했음이 드러난다. 리용호 외무상의 설명은 영변 핵 시설 폐기의 범주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시키고 이 한도 내에서 미국의 사찰 및 검증 등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에 가깝다. 리용호 외무상 기자회견 직후 질의응답에 나선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역시 “미국의 해커 박사가 방문한 바 있는 영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영구 폐기하겠다는 제안을 내놨지만 미국의 호응이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보면 ‘일부 제재완화’라는 대목에서도 미국의 주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리용호 외무상은 자신들의 제안에 대한 상응조치로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최선희 부상 역시 “2016년부터 (유엔이) 취한 대북제재결의가 6건이다. 이 중 2270, 2375호 등 5건에 대해 100%가 아니고 민생과 관련된 부분만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쪽의 주장을 종합하면 2차 북미정상회담 협상 테이블에 실제 올라간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재구성 해볼 수 있다. 애초 회담 직전 예상됐던 합의안은 영변 핵 시설 폐기, 북미관계 개선 관련 조치,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 예외 결정 등이다.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쟁점은 영변 핵 시설 폐기의 범위와 사찰 및 검증 수용 여부(이른바 영변 플러스 알파), 종전선언 및 상호연락사무소 설치 여부, 추가 제재 완화 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리용호 외무상 등의 설명을 보면 적어도 북한은 이 범주 내에서 협상에 응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전선언 및 상호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제외하고 영변 핵 시설 폐기 관련 제기될 수 있는 쟁점을 최대 한도로 양보하더라도 추가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 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청와대 제안대로 양자 종전선언과 남북경협 카드를 꺼내면 반대로 비핵화 관련 쟁점에서 방어에 나서는 전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확대회담 모두발언 자리에서 이뤄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나왔다. 비핵화 의지 등을 묻는 질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대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질문과 응답이 오갔는데,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문제가 언급되자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들을 내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지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답변이 궁금하다”고 했고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을 내놨다. 그러나 앞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합의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입장 표명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요구한 셈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간 북미대화의 교착은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했을 때에야 제재완화를 할 수 있다는 미국과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조치를 고집하는 북한 사이에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싱가포르 합의와 평양공동선언을 거치며 미국이 단계적 해법의 일부를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만들어졌다.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실무협상에 투입된 이후에는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가속이 붙었다. 비핵화 조치가 일단 영변 핵 시설에 한정돼 적용되는 방식의 합의를 언론이 예상한 것은 이 결과이다.

영변 외의 핵 시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북미 간의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시설들의 존재가 공식화된 바 없기 때문이다. 만일 영변 외의 핵 시설까지 비핵화 조치에 넣어야 한다고 하면 북한이 자신들의 핵 관련 시설을 신고하고 미국이 이를 검증하는 모델을 상정해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 경우 반드시 ‘진위’와 관련한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신뢰가 형성되자 않은 상태에서 전체 비핵화 협상이 깨질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들이 영변 외의 핵 시설을 찾아냈고 북한이 이에 놀랐다고 설명했지만 영변 외 핵 시설의 존재는 북한이 공식적인 형태로 인정한 바 없을 뿐 공인된 사실에 가깝다. 문제는 그러한 시설이 어디에 몇 개나 더 있는지를 북한 외에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 중 한 곳을 특정해 “플러스 알파”로 규정하면 그 다음 국면은 제2, 제3의 플러스 알파들이 테이블에 오르게 되고 이것은 ‘핵 시설 리스트’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원래 북한의 입장은 이런 정도의 요구는 사실상의 ‘적국’에 할 수 없는 것이므로 미국의 적대정책이 철회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영변 외의 핵 시설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것은 애초 예상된 협상 내용의 바깥으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존 볼턴 백악관 NSC보좌관의 등장이다. 애초 베네수엘라 문제 등에 집중하는 걸로 알려졌던 존 볼턴 보좌관이 확대회담에 들어가면서 쟁점은 완전히 싱가포르 회담 이전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측이 상대가 제기하는 ‘상응조치’에 요구를 더해가면서 대량살상무기 전부 신고 및 폐기 등의 완전한 비핵화와 제재 전부 해제가 부딪치는 상황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합의가 안 되는 상황까지 예상하고 협상에 임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빅딜’을 시도하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불완전한 최소한의 합의보다는 협상을 결렬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판단은 물론 미국 내에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만연해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아마 협상 당일 미 하원에서 진행된 마이클 코언 변호사 청문회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된다.

아무튼 이로써 가장 곤란한 처지가 된 것은 우리 정부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양자 간의 종전선언과 남북경협 예외 결정 등을 구체적으로 추동하며 중재자로서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에 직면했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나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주변국들의 발언력이 커질 수 있다. 그러면 비핵화 협상은 더 어려운 길로 빠질 것이다. 당장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납치자 문제와 중단거리 미사일 관련 쟁점 제기를 위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주장하는 게 이를 보여준다.

대내적으로도 난감한 상황이다. 정부는 3.1절을 맞아 대통령이 제기한 신한반도체제 경제구상을 내놓을 예정이었고 이를 위해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인사를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했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게 됐다. 빠른 시일 내에 북미 간의 협상을 재개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비핵화 협상은 장기화 돼 사실상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모든 걸 떠나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신의 한 수’를 찾을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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