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2차 북미정상회담 관련 일정이 시작됐다. 비관과 낙관이 그야말로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합의 자체를 성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번 회담의 그런 성격 때문에 정치적 논란은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북미 간 협상의 기본 얼개는 북한이 이행해야 할 비핵화 관련 조치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미국이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지난해 9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가능성을 언급한 영변 핵 시설 폐쇄에 무엇을 더할 수 있을 것인가와 미국이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조치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런 구도는 애초의 핵 시설에 대한 신고-폐기-검증을 전제로 한 협상 구도와 다소 달라진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언론은 일제히 2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북한이 이미 유효하지 않은 영변 핵 시설 폐쇄라는 ‘쇼’를 거행하고 ICBM 개발 동결을 약속하면 외교안보 전략에서 고립주의적 노선을 고수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못 이기는 척 제재 완화 등의 선물을 안겨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26일(현지시간)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오후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언론의 우려는 현실이 될까? 이 시점에서는 절반의 대답만 할 수 있다. 영변 핵 시설 폐쇄와 ‘플러스 알파’만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이 주어지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할 때와 마찬가지의 원리로 디테일을 보지 않으면 성과를 평가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영변 핵 시설 폐쇄의 문제이다. 영변 핵 시설 폐쇄를 ‘쇼’라고 보는 관점은 두 가지 판단을 전제한다. 첫째는 영변에 존재하는 시설의 핵심이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생산에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영변이 아닌 다른 장소에 핵 시설이 은닉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북한은 인정한 바 없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영변 핵시설에는 플루토늄 생산 뿐만이 아니라 우라늄 농축을 위한 시설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변 핵 시설 폐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서 추가적인 쟁점이 형성된다. 그 첫째는 폐쇄의 범위에 북한이 그동안 적어도 공식적으로 존재를 인정한 일이 없는 고농축 우라늄 관련 시설이 포함되느냐이다. 둘째는 이러한 시설들의 폐쇄를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 또는 국제사회가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느냐이다. 이 두 가지 대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방식의 합의를 하는지에 따라 이후 핵 시설들에 대한 추가 폐쇄와 검증 여부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즉, 신고와 검증에 관한 쟁점이 영변 핵 시설 폐쇄라는 주제 안에 이미 잠복돼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핵 시설들의 완전한 신고와 검증을 거부해온 논리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과거 사례를 볼 때 핵시설에 대한 신고를 단행하더라도 그것의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추가 쟁점이 발생해 오히려 전체 핵 협상의 판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북한과 미국이 실질적으로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도 없는데 군비와 관련한 정보를 적국에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결정을 쉽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미국에 ‘상응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주장이기도 하지만 신고와 검증이 포함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한 논의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실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액션을 취해야 신고와 검증에 관한 논의의 실질적 진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액션’은 구체적으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 같은 체제적 차원에서의 안전보장과 국제적 차원에서의 경제 제재 완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두 가지 조치 모두가 트럼프 행정부의 결단 만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문제의 경우 주변국가들의 참여 여부라는 추가 쟁점이 발생한다. 종전선언과 관련한 그간의 합의가 ‘3자 또는 4자’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는 종전선언이라는 이벤트의 무게감을 낮추는 성격의 논의가 진행된 측면이 있다.

제재 해제의 경우 북한 비핵화 달성 가능성에 매우 회의적인 미국 내 여론이 문제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자신은 그리 급하지 않으며,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제재 완화는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없다는 등의 메시지를 빠뜨리지 않고 내놓아 왔다. 뒤집어 말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회의적인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성과를 내는 것에 급급해 북한에 쉽게 양보를 하고 비핵화를 확신할 수 없는데도 제재 완화라는 보상을 해줄 것으로 본다는 거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의 과정에서 미국은 신고와 검증과 관련한 논의의 진전을 요구하고 북한은 상응조치를 요구하며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로서 나름의 묘수를 내면서 논의가 진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종전선언은 북미 양자가 하고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금강산 관광 등의 남북경협사업 추진 예외를 인정한다는 선에서 합의한다는 절충의 조건을 만든 것이다.

종전선언의 당사국을 자처하는 국가는 남북미중이다. 4개국의 종전 논의는 쉽지 않고 복잡하다. 그런데 종전선언의 무게감을 충분히 낮춰 놓은 상태에서 남한이 북미 양쪽 만의 종전선언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 중국도 굳이 종전선언 참여를 고집하기 어려워 진다. 종전선언은 북미 양쪽의 결단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원래 북한의 입장이기도 하다. 앞서 정리한대로 미국이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해서 북한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프로세스에 돌입할 수 있다면 핵 신고와 검증 요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의 적국에 군사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북한의 논리가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 등의 제재 예외 인정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남북 경협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적 차원의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논리로 국내의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 또 남북관계에서도 그간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 등의 이행 문제가 논의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즉, ‘중재자’로서 내놓은 문재인 정부의 대안이 북미 간 또 남북 간 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전제하면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 앞서의 ‘선순환’ 구조가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북미 간 또 남북 간의 대화와 협상이 반복된다면 느린 속도로라도 비핵화 달성의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탱할 수 있도록 각자 국내정치적 환경이 안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남한 내 여론부터가 문제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가 나오면 보수언론은 총공세에 나설 것이다. 북미 간의 미진한 합의로 북한은 결국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사실상 손을 떼게 됐다는 평가는 이미 예정돼있다. 겨우 이런 성과를 위해 문재인 정권은 종전선언의 당사국으로서 자격도 포기하고 남북경협이라는 재정적 부담만 뒤집어 쓰게 되었다는 비난도 나올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비아냥도 동원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난관을 뚫고서 문재인 정권이 중심을 잡을 수 있으려면 남북관계 이외의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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