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해적당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유럽에서 해적당이 떴다는 기사를 보고 재미있는 실험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국제회의에 나가 독일의 활동가들과 독일 해적당에 대한 얘기를 나눈 바 있다. 최근 해적당에 대한 관심이 생긴 계기는 위조방지무역협정(ACTA)에 대한 대응을 하면서 였는데, 이 협정에 대한 세계적인 반대 활동에 해적당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조방지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서명 목록을 보면서 이미 상당히 많은 나라에서 해적당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해적당 인사를 초청하여 얘기를 들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에 공감하는 몇몇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해적당 초청이 현실화하게 되었고, 지난 10월 18일, 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 앤더스도터(Amelia Andersdotter)가 방한하였다. (원래는 17일 오전 도착 예정이었으나, 프랑스 파업의 여파로 하루 늦게 도착하였다.) 초청 행사의 개요는 <우리도 해적이다> 홈페이지(http://pirateparty.kr)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개 별 초청 행사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공유연대, CC Korea, 인터넷 주인찾기,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및 고려대학교 법대 등 다양한 단위에서 주최를 하였지만, 아멜리아의 초청 주최는 <우리도 해적이다>이다. <우리도 해적이다>는 단체들의 연대체도 아니고, 아직 대표나 회원 등을 갖는 조직의 형식도 갖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적당 설립을 목표로 하는 준비모임도 아니다. 아직은 그저 해적당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이 정도가 해적당과 관련하여 현재 우리나라의 논의 수준이다. 해적당 준비모임이 만들어지고, 아멜리아의 방문에 맞춰 해적당(준) 이라도 발족했다면 좀 더 뉴스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이번 행사를 통해 '당원'을 모집하는 계기도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해적당 운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해적당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조차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초청은 국내에서 해적당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젊은/좌파/여성/해적/의원인 아멜리아는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나이인 (한국나이로) 24살. 방문 첫날, 행사를 치르고 난 뒤풀이에서 홍대 거리를 걸으며 에반게리온 주제가인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읊조리거나, 아무 일정이 없던 21일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데이트를 한다고 좋아하는 등 그 또래의 발랄함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한국의 노련한 국회의원(남경필 의원)과의 면담에서는 당당하게 한EU FTA의 문제점과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통상 협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연함도 보여주었다. 또한, 한EU FTA를 비롯하여, 주요 EU 지침(Directive)의 내용에 대해서 문구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과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해적당이 저작권 정책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권리자단체들이 불법복제자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해적'이라는 단어를 당의 이름으로 채택한 것으로 봐도, 저작권에 대한 해적당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고, 이번 방한 행사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한 것이었다. 스웨덴 해적당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파악해 둔, 해적당의 저작권에 대한 입장은 저작권 보호기간의 5년으로의 단축, P2P를 포함한 비영리적 파일 공유의 허용, 디지털권리관리(DRM)의 제한 등 현행 저작권법의 근본적 개혁이었다. 특허는 아예 폐지해야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에 반해, 저작권에 대해서는 폐지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작권에 대한 아멜리아의 입장은 더욱 급진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저작권은 죽었다”고 단언했다. 현재 인공호흡기를 붙이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아멜리아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아멜리아에 따르면, 스웨덴 해적당 내에서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당원들 간에 끊임없는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6년 해적당이 설립될 당시에는 저작권 폐지에 대해서는 너무 급진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서와 같은 정도로 입장이 정리되었는데, 현재는 저작권에 대해 (최소한 온라인에서는) 폐지의 입장이 많다고 한다.

물론 '저작권은 이미 죽었다'는 판단이든, 저작권을 폐지해야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든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각 국 해적당의 정책이 동일한 것은 아니므로, 이와 같은 입장은 전 세계 해적당 전체의 통일된 입장이라기보다는 스웨덴 해적당의 입장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한국에서 보기에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저작권의 칼날이 여전히 이용자들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갈수록 권리를 강화해나가는 권리자단체나 정부의 강고한 자세를 볼 때, '저작권이 정말 죽었는지'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저작권이 폐지되면 창작자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멜리아의 답변은 한계가 있었다. 그녀는 마이크로 페이먼트 시스템과 같은 유럽에서의 몇 가지 대안적 수익구조 사례를 들었는데, 그리 설득력 있게 청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하다. 물론 그녀도 인정했다시피, 대안적인 수익구조의 문제는 그녀의 주된 관심사나 전문분야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고, 대안적 수익구조의 사례도 많은 스웨덴(유럽) 상황과 달리, 자신의 생계와 지속가능한 창작의 조건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면 굶어죽거나 창작을 포기해야 하는, 그리고 대안적 수익모델에 대한 실험도 거의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저작권 대안에 대한 고민은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 최문순의원실 주최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 토크쇼
'대안'에 대한 고민은 문화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포함한다. 아멜리아가 많이 받았던 질문 중의 하나는 "(저작권을 폐지하면) <아바타>와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겠는가?"였다. 이에 대한 아멜리아의 답변은, 저작권은 창작자에 대한 보상 시스템으로서는 가장 좋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 <아바타>의 대중적인 성공이 저작권 시스템이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바타>와 같이 거대 자본이 투여된 영화가 전 세계 시장과 시민들의 관심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는 것보다, 다양한 영화들이 보다 풍부하게 생산이 되고 시민들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한국과 달리) 스웨덴에서 해적당이 만들어진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어떠한 과정을 통해 당이 만들어졌는가? 왜 굳이 당운동의 방식을 선택했는가? 등이었다. 스웨덴에서는 2006년 해적당 설립 이전, 2003~4년부터 <해적 사무국(Piratbyr__, The bureau of Pirate)>이라는 단체가 있었고, 이를 통해 '해적에 대한 단속(anti-pirate)' 행위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활동이 생성되어 왔다. <해적 사무국>은 법률보다는 기술, 사회, 문화적인 분석과 비판이 중심이었던 듯하다. 이들 중 일부가 P2P 파일 공유 사이트인 <파이럿 베이(The Pirate Bay)>를 만들었다. 2006년 이후 <파이럿 베이>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과 재판이 해적당의 성장에 큰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해적당이 설립되기 전 해인 2005년에는 파일 다운로드를 불법화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큰 이슈가 되었다. 이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전개가 되었고, 결국 이 활동이 해적당에 대한 설립으로 이어진 듯하다. (아멜리아가 스웨덴 해적당이 설립된 2006년 이전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녀도 2006년부터 스웨덴 해적당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상황적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계기들이 있었다. 1999년부터 정보공유연대와 진보넷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운동을 벌여왔었고, 2000년대 초반에 소리바다가 큰 이슈가 되었고, 이후 몇 년 동안 소송이 이어졌다. 주요한 저작권법 개정이 있을 때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올려놓은 배경음악과 동영상, 사진들을 삭제하느라 네티즌들은 큰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왜 한국에서는 해적당을 설립할만한 토양이 왜 이리 척박한가? 사회적인 토양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의 정보공유 운동은 저작권에 대한 대항/대안 담론을 형성하는데 실패하였다. 스웨덴에서 P2P 파일 공유에 대한 금지는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으로 인식되었다. 해적당은 이를 '정보 민주주의'에 대한 후퇴로 정치화하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네티즌들이 개정 저작권법에 대한 불만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정보공유 운동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자연스러운 저작물 이용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주지 못했다. 이는 단지 선전, 선동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과정에서, 이를 정보사회의 정보 민주주의 차원의 문제로 제기하고 설득력 있는 담론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작권에 대한 해적당의 입장은 정보사회에서 정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보의 생산, 유통, 관리에 대한 비전, 즉 특정 권력에 의한 정보의 통제에 반대하며, 좀 더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확보하고, 개인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비전으로부터 나온다. 특허에 대한 해적당의 정책이나 프라이버시와 같은 시민적 권리, 망 중립성 등의 통신정책에 대한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정보인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보사회의 제반 이슈들을 포괄하고자 했으나, 이는 인권적 차원의 개념일 뿐 정보사회에 대한 전체적인 비전은 아니다. 또한, 저작권 이슈를 인권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 역시 아직 정립되지 못한 상황이다.

굳이 '당' 운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아멜리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이슈를 사회적으로 제기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해적당이 ‘센세이셔널리즘’이나 ‘포퓰리즘’ 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녀의 주장은 분명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물론 한국적 환경에서, 즉 정당의 설립하기 위한 요건이 너무 엄격하고 소수 정당이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하기 매우 힘든 선거 시스템을 가진 상황에서 당 운동이 효과적인가라는 것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비록 올해 스웨덴 총선에서 스웨덴 해적당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기는 힘들지만(지난 9월 18일 스웨덴 총선에서 해적당은 1% 정도를 득표하여 원내 진입에 실패하였다), 아멜리아는 해적당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물론 해적당 정치인이 자신들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기는 힘들겠지만) 녹색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데 10년 정도가 걸린 반면, 자신들은 훨씬 빠르게 정당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적당이 설립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적인 해적당 운동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결국 그들이 만들고 있는 변화가 우리와 무관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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