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상품권깡'으로 마련한 비자금을 국회의원들에게 불법후원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KT가 이번에는 '2차 횡령' 의혹에 휩싸였다. 국회의원들로부터 돌려받은 돈을 후원자로 명의를 올린 임원들이 회사로 반환하지 않고 챙겼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비자금을 조성한 금전을 19, 20대 국회의원 99명의 정치후원회 계좌에 입금한 혐의로 KT를 수사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월 17일 황창규 회장과 KT 전·현직 임원 등 7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황창규 KT 회장. (연합뉴스)

KT는 계열사를 통해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사들인 상품권을 다시 현금으로 바꾸는 '상품권깡'을 통해 11억5000여만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가운데 4억4190만 원을 KT임직원 명의로 국회의원 후원계좌에 입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KT로부터 받은 정치후원금을 되돌려줬다. 이 중 일부는 문제가 되기 전 돌려준 사례도 있으며, 문제가 제기되자 반환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돌려준 금전이 KT 회사 통장에 반환되지 않고, 국회의원을 후원했던 명의자가 개별적으로 사용했다는 '2차 횡령' 의혹이 제기됐다. KT새노조와 약탈경제반대행동은 해당 혐의에 대해 22일 검찰에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반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정치후원금의 입금자인 KT 임원에게 후원금을 반환했는데, 이 반환된 돈을 일부 임원들이 회사로 반납하지 않고 착복했으며, 그나마 반납한 임원들도 뒤늦게 KT 공식계좌로 반환했는바, 이는 횡령에 해당한다"며 "철저한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은 미디어스와 전화통화에서 "담당 임원들이 이 회수자금을 다시 횡령했지만, 황창규 회장은 이것을 방조하고 이들에 대한 아무런 제재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며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경영윤리조차 없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홍성준 사무국장은 수사기관이 이 사건을 축소수사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KT 불법후원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황창규 회장을 횡령, 뇌물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KT가 상품권깡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횡령, 국회의원들에게 후원한 것은 뇌물에 해당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당초 경찰은 KT가 불법 정치후원을 하게 된 동기를 국회 '로비'를 위한 것으로 봤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저지', 'SKB-CJ헬로비전 합병 저지', '황창규 회장 국정감사 출석 제외', '은행법 등 KT와 관련된 법률에 대해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 등 현안 업무와 관련해 국회와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 후원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대가성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찰은 황창규 회장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송치하면서 뇌물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KT임직원들에게만 적용했다.

홍성준 사무국장은 "불법후원을 받은 국회의원이 99명인데, 보좌관 몇 명 불러서 물어보고 수사가 끝났다"며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해야 한다. 국회의원 99명을 다 소환해서 일일이 대질조사를 해야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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