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사진과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 ‘배드 파더스’에 시정요구(사이트 차단)를 하지 않기로 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개인의 명예훼손도 중요하지만, 신상 공개로 인한 공익성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배드 파더스는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다. 현재 배드 파더스에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하지 않는 아버지 153명, 어머니 16명의 이름·사진·직장·거주지 등이 게재되어 있다.

배드 파더스의 양육비 미지급 명단에 들어간 A씨는 “배드 파더스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내 초상권을 침해하고 명예훼손을 했다”면서 방통심의위에 시정요구(게시물 차단)를 요구했다.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22일 A씨가 민원을 제기한 게시물, 배드 파더스 사이트의 시정요구 여부를 놓고 회의를 진행했다.

▲배드 파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배드 파더스 측은 의견진술에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있지만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빠져나갈 법적 구멍이 많고, 양육비 지급이 중단될 때마다 매번 변호사를 통해 법적 조치를 하려면 비용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배드 파더스는 “신상 공개 후 80명의 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방통심의위는 두 건 모두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렸다. 위원 3인은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렸고, 1인은 시정 요구 건의를 했다. '해당 없음' 결정을 내린 위원은 배드 파더스의 공익성을 인정했다. 반면 시정요구를 건의한 위원은 양육비 미지급이라는 사안의 심각성과 별개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21일 방통심의위에 “배드 파더스의 게시물은 불법성이 명백하지 않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냈다. 오픈넷은 “배드 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 리스트가 법원의 판결문과 합의서를 근거로 작성된 것이라 밝히고 있다”면서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의 양육비 이행 관련 제도는 강제력이 없다.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부모가 이를 거부할 경우, 양육비를 받지 못한 쪽에서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미국·덴마크·스웨덴 등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운전면허 정지·출국 제한·형사 처벌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실제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양육비 지급 이행률은 2016년 36.9%, 2017년 36.3%, 2018년(1월부터 10월까지) 33.3%로 조사됐다. 3회 이상 지급을 한 경우는 46.9%에 그쳤다. 민사 소송을 제기해도 양육비를 받아낸 경우는 31.7%에 불과하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지난해 공개한 <양육비 이행 모니터링 내역>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소송으로 양육비 지급 명령이 떨어진 사례는 총 1만414건이지만 이중 급여 압류·추심 등을 통해 실제로 양육비를 받아낸 경우는 총 3297건에 그쳤다.

시민사회단체·정부·정치권은 양육비 강제 집행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양육비해결모임은 14일 양육비 지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양육비해결모임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사실상 법이 없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법이)부실하다”면서 “양육비 미지급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가 걸린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는 이달 중으로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 공개·출국 금지·면허정지·형사처벌 등 네 가지 제재를 담은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맹성규·전혜숙·정춘숙 의원과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 역시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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