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국제 대회에서 연달아 좋은 성적을 내면 우리는 '효자 종목'이라고 불렀습니다. 매 대회마다 금메달을 2-3개씩 따내는 양궁을 비롯해 태권도, 유도 등 투기 종목, 그리고 야구, 핸드볼 등 일부 구기 종목들이 대표적인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지요. 그러나 세대교체 실패 등 대표팀 내부적인 문제, 그리고 옅어지는 선수층과 그에 따른 인재 부족 등의 포괄적인 문제 등으로 이제는 그저 '옛 영광'에 불과하게 된 '잊혀진 효자 종목'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종목들이 바로 레슬링, 복싱입니다. 레슬링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종목으로 서방 국가들이 불참한 1980년을 제외하고 7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었습니다. 또 복싱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12개 전 종목을 석권한 것을 비롯해 1984년, 88년 올림픽에서 역시 금메달을 연달아 따내는 등 아시아 최강국이라는 명성을 날린 대표적인 종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종목 모두 옅어지는 선수층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면서 몰락했고, 이제는 언론들도 많이 주목하지 못하는 신세를 겪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내일은 해가 뜬다'는 마음으로 두 종목 선수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으며, 선전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연합뉴스

사실 레슬링은 4년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괜찮은 '효자 종목'이었습니다. 도하 대회에서 레슬링은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1986년 서울 대회부터 이어온 '금메달 5개 이상'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바뀐 룰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축 선수들의 부진에 따라 이를 대체할 만 한 선수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서 세계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베이징올림픽 때는 결국 '노골드'의 수모를 겪었고,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아예 메달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부진을 이어갔습니다.

복싱은 더합니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선수층이 옅어지기 시작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노골드로 전락한 것을 시작으로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서는 이렇다 할 명함조차도 못 내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다 국제복싱연맹과 대한복싱연맹 전 집행부 간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갈등, 그리고 국제복싱연맹의 대한복싱연맹 회원 자격 박탈 등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져 선수들이 집중적으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겨우 대한체육회가 전면에 나서 수습하기는 했지만 이미 오랫동안 이어진 이 뒤숭숭한 분위기를 만회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들 속에서도 오직 다시 일어서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레슬링, 복싱 선수들은 어떤 언론 인터뷰도 마다 않고, 외부와의 접촉도 최대한 자제하며 누구보다 훈련에 열중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옛 영광은 그야말로 '옛 영광'에 불과하고, 현재의 아픔을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선수들은 뛰고 또 뛰었습니다. 체력과 기량, 그리고 정신력 면에서 모두 최상의 수준을 갖춘 레슬링 그리고 복싱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쏠 수 있을지 그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습니다.

▲ 아시안게임 복싱 국가대표 신종훈ⓒ연합뉴스
레슬링은 지난 5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금메달 5개를 따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55kg급의 떠오르는 '늦깎이 신예' 최규진을 비롯해 이미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저력을 보여준 정지현 등이 그레코로만형에서 우승을 꿈꾸고 있고, 자유형에서도 김효섭, 이승철 등이 메달권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세대교체가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고, '뭔가 해보자'는 의식이 선수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에 퍼지면서 다시 도하 아시안게임 이전 수준의 '최대 효자 종목'다운 면모를 보여주려 하고 있는 레슬링입니다.

레슬링에 비해 복싱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다소 전망이 어둡습니다. 앞서 전한 것처럼 내부적인 문제 때문에 선수들이 훈련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국제적인 경험들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4년 만에 동메달을 따낸 49kg급의 신종훈을 비롯해 도하 대회 은메달을 따낸 60kg급 한순철 등이 메달권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여름 내내 상당히 힘든 훈련을 소화하며 정신력만큼은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조금이나마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또한 레슬링과 복싱 모두 여자 선수들이 출전하는데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소리 없는 반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메달로 부활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점진적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발전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새로운 신예들의 경험, 그리고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희망의 싹'을 다시 틔우면서 예전의 영광을 넘어 또 다른 영광을 받는 두 전통의 효자 종목, 레슬링과 복싱 선수들의 모습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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