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막장 드라마의 신기원을 열었던 김순옥 작가의 SBS <황후의 품격>의 마무리는 역시 막장의 여왕답게 남달랐다.

드라마계의 저승사자라고 불린 임성한 작가가 울고 갈 정도로 수많은 인물들이 죽임을 당했던 <황후의 품격>. 남자 주인공 황제 이혁 역을 맡은 신성록이 사망하고, 드라마의 모든 악의 축인 태후 강씨(신은경 분)가 대한제국 몰락 후 7315 사형수가 되어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성한 모습으로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드라마야? 시트콤이야? 예능이야? <황후의 품격>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을 것이다. 얼떨결에 황후가 되어 대한제국에 입성한 오써니(장나라 분)가 다짜고짜 해외 귀빈들 앞에서 '아리랑'을 부르지 않나, 살인‧살인 교사가 속출하는 나머지 극중 누군가의 허무한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는 이 괴상한 드라마에 말이다.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

주인공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어나갔던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 공주>의 대성공 이후, 극 중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막장 축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시청자들이 이제 작가에 의해 속수무책 죽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운명에 큰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은 임성한, 김순옥과 같은 막장 대모들이 그간 열심히 쌓아 올린 공로 덕분이겠다.

하지만 시청률이 좀 높다는 이유로 무리한 연장을 추진해 미리 약속해 놓은 해외 스케줄 때문에 연장 촬영에 참여할 수 없었던 배우 최진혁이 맡은 나왕식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허무한 죽음을 맞은 것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나왕식은 이혁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잃고 자신 또한 구사일생에서 살아남은 뒤 황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드라마의 메인 주인공이다. 누구보다 황실 붕괴를 염원하고 있었고, 대한제국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왕식이 드라마 제작진의 무리한 연장 추진으로 아무런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홀연히 증발해 버리니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코미디가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

뿐만 아니라, <황후의 품격>은 악녀가 된 민유라(이엘리야 분)의 복수의 개연성을 위해, 그녀가 임신 도중 성폭행을 당한 걸로 암시하는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일부 시청자들은 <황후의 품격>의 '임신부 성폭행' 장면을 두고 작가 징계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게시하기도 했다.

물론 <황후의 품격>의 선정성 논란은 '임신부 성폭행'뿐만이 아니었다. 15세 이상 연령대가 시청하는 지상파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스킨십은 물론 사람을 납치한 뒤 시멘트를 쏟아 붓는 고문 장면도 내보냈다. 이혁이 오써니를 밀친 뒤 강제로 입을 맞추는 '데이트 폭력' 장면도 방영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준 셈이다.

온갖 나쁜 짓은 서슴지 않고 벌인 황제도 죽고, 태후 강씨도 몰락하고, 대한제국을 완전히 몰락시킨 오써니는 동생 오헬로(스테파니 리)와 함께 그녀를 유독 잘 따랐던 아리공주(오아린 분)과 이윤(오승윤 분) 황태제와 함께 이제는 황실 박물관이 된 궁을 돌아보며 과거를 추억한다. 그리고 오써니의 아름다운 미소로 마무리 되는 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황후의 품격>은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 장나라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는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둘러싸고 매회 논란이 발생했지만, 장나라의 연기만큼은 찬사 일색일 정도로 유독 장나라가 돋보이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하지만 <황후의 품격> 덕분에 배우 장나라 개인은 크게 웃을 수 있었지만, 지상파 드라마의 품격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지상파 드라마가 예전만큼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tvN, JTBC, OCN 드라마에 속수무책 밀려버리는 현실에, 온갖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대사와 장면이 가득했던 <황후의 품격>이 지상파 드라마 위기론에 더 불을 지핀 것 같다. 더 이상 장나라의 뛰어난 재능이 이런 드라마에 낭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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