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 양문석 위원의 반대 및 퇴장에도 불구하고 방통위가 소위 ‘사업자 허가 세부심사기준조건’이라는 걸 발표했다. 종합편성채널을 둘러싼 현장에 마침내 총성이 울린 셈이다. 비상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민사회와 운동진영, 진보학계, 그리고 시민대중들은 한국 미래 진보/정치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종편 전선으로 서둘러 옮겨가야 한다.

수신료 싸움에 매진했던 전력을 종편 싸움에 총집중시켜야 하다. 방통위 두 야당위원들이 ‘싸움닭’처럼 제대로 못 싸웠다며 투덜대는 자가 혹 있는가? 그러기에 앞서, KBS 앞에 과잉 집중된 공력의 철거와 방통위 앞 분산배치작업부터 서두르라. 운동력을 집중시키라. 일방적 종편허가 저지의 외부 바리게이트를 튼실하게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두 사람에게 ‘돌격하라!’ 요구하는 건 어리석고 위험한 ‘자뻑’의 길일뿐.

종편 인가는 두 사람만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일이다. 단식을 해도, 의사봉을 가로 막아도, 심지어 사표를 던져서 될 게 아니다. 비판의 무기, 투쟁의 수단, 저지의 방법이 그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신료 때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우리에게 모든 게 달려있다. 싸움은 바깥에서부터, 대중들의 관심과 의식에 기초해, 권력과 사회 사이 운동/지성권을 매개로 해 먼저 전개되어야 한다. KBS 수신료 싸움에서도 그렇지만, 방통위라는 제도 내부의 (‘합의’라는 이름의) 협상 게임은 바로 그런 외부 담론/이념 운동력의 내적 전화에 불과하다. 이런 원론/원칙적인 차원을 넘어, 종편 허가 문제는 수신료 인상 문제에 비해 훨씬 헤비급이기 때문에도 운동성의 조정이 시급하다. 언뜻 보면 반대인 것 같지만 그것은 착시효과 때문이며, 이제 우리는 종편 문제를 서둘러 핵심 현실로 정리해내야 한다.

▲ 10일 오전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65차 위원회 회의에서 최시중 위원장이 회의시작을 알리고 있다.ⓒ연합뉴스

단순히 일개 (사실은 복수로 허가할 공산이 다분하기 때문에 이 표현이 적확하지는 않지만) 방송 채널의 등장을 뜻하지 않는다. 지상파 진출에 실패한 (그것도 현재로서만 그렇다는 의미인 데) 조중동 등 수구매체권력이 (보기에 별로 영양가 없는) 케이블 방송사를 갖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의 지배력이 이미 상당 수준 와해된 상태에서, 종편의 복수적(plural) 출현은 공영방송체제의 결정적 위축을 가져온다. 요컨대 방송 공익성과 미디어 공공성의 조직적 해체, 대중 정치공간(흔히 말하는 공론장)의 붕괴로 귀결되는 게 바로 종편의 출현이다. 그렇게 종편은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화된 위기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킬 냉혹한 킬러로서 등장한다. 복수로 허가하려는 조중동 방송, 미디어재벌 채널의 문제를 서둘러 사회적 문제, 정치적 주제로 래디컬화해내야 하는 이유다 .

G20이후 급히 추진될 종편 허가에 관한 대중의 비판적 관심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종편’을 교차소유의 제도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안으로 정확히 여론화하는 작업이다. 종편 허가의 무리한 추진방식, 일방적 허가과정에 공개적으로 개입하며, 방통위의 일방적 추진에 대한 반대 담론을 합리적으로 생산하는 활동 전략의 구사다. 수신료 인상 저지에 산출된 운동역량을 재조정하고, 수신료 인상 시도에 제기된 반대여론을 재 결집시켜야한다. 정말 급하다. 수신료 싸움의 언덕에서 종편 전투의 현장으로 전력을 서둘러 이동하라! KBS 이사회 내 ‘합의’ 반대의 방어전을 유효하게 고수하면서도, 그동안 축적된 공력과 단단히 응집된 동력을 종편 저지 투쟁에 효과적으로 배치하라!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못 막는다. 그래서 막을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인 게 종편허가 저지 투쟁의 성격이다.

‘수신료 문제는 어떻게 하고?’라며 반문할지 모르겠다. 답은 벌써 나와 있다. 3500원으로 깎아 내릴지도 모르는 여당 이사 측 제안을 야당 이사들이 어리석게 덥석 물지만 않는다면, 정상적인 인상을 위한 이사회 내 ‘합의’는 이미 물 건너갔다. 합의 약속을 무시한 일방추진 가능성을 완전하게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런 무리수를 택했을 때의 대비책은 우리가 미리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시청자 대중들의 당연한 저항이 따를 것이고, 제도 정치권이 알아서 반대할 것이다. 이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종편의 성공적 런칭을 위해 시도한 수신료 인상 때문에 전자까지 차질을 빚는다면, 아쉽지만 후자는 나중으로 연기했다는 이야기가. 광고 퍼주기라는 선물을 마련하려 했는데 워낙 구설이 심하니 정권 보위 차원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 KBS 수신료 인상저지 100일 행동은 10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수신료 분리징수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KBS 새 노조 파업 당시, 본관 앞에 화분을 놓아두었던 KBS는 이날도 '시청자가 주인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회사 차량으로 본관 앞을 봉쇄하는 등 시민사회를 막아섰다. ⓒ곽상아
사실 KBS가 무척이나 공 들여 온 수신료 인상 문제와 방통위가 무리하게 서두르는 종편 허가의 연관성을 두고 볼 때, 무엇이 ‘주’고 무엇이 ‘종’인지 따지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후자가 주고, 전자는 종일뿐이다. 바꿔 말해, 종합편성채널 허가는 방송구조개편이 핵심적인 내용이고, 수신료 인상은 그 부수적 수단에 불과하다. 신보수/신자유주의 정권에 의한 방송 구조조정의 목표가 비판적, 사회적, 공익적일 수 있는 공영방송의 해체, 와해, 축소에 맞춰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까지 쭉 그랬다. 그런 일정 속에서 종편채널의 복수적 허가는 보수 상업적 미디어재벌에 의한 공영방송체제의 탈 구축 효과를 노린 정치경제적 기획 그 자체다. 너무나 중요하기에 재차 강조하자면, 종합편성채널의 출범은 공영방송의 해체로 이어지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지금도 위태로운 사회 민주주의를 더욱 구조화된 불능 상태로 이끌 위급한 사안이 다름 아닌 종편채널 등장인 것이다. 요컨대 ‘기득권적 종편채널의 허락=시민적 민주주의 추락’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수구적 권력의 종편 진출은 정치의 패배, 선전의 승리를 뜻할 따름이다. 가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보다 앞서 미국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진실이다. 폭스라는 종편채널의 등장이 신자유주의/우익 정권하에서 어떻게 기획되었고, 불안한 미디어 생태계를 어떻게 결정적으로 교란했으며, 제국의 선전에 부역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어떻게 미국 민주주의를 파괴했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방송시장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닌, 정치공학적인 산법에 따라 제조된 현실이 보수적 종편채널에 의한 리버럴한 지상파 방송의 제압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할까? 조중동과 매일경제라는 일관되게 우익적이고 철저하게 권력적이며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적인 신문사가 소유한 채널들이 (보수적일게 확실한 보도전문채널과 함께) 동시에 뜬다면? 그 동시다발성의 결과는? 종편의 자멸? 천만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지옥도가 먼저 펼쳐진다. 지상파를 중심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방송 공익성 개념이 당장 끝장난다. 방송 ‘문화’라는 게 사라질 게다. 폭스 같은 선전/오락 채널이 한꺼번에 몇 개나 뜬다고 상상해 보라!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서로 경쟁할 거고, 시청률/광고를 얻기 위해 정신없는 프로그램들을 마구 쏟아 낼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존 방송사, 채널들을 마구 잡아먹으려 들 것이다. 인수합병(을 위한 법 개정)을 시도할 것이며, 그래서 절대적 독과점의 위상학을 높인다. 군소 신문, 피라미 지역 방송사들의 떼죽음을 뜻한다.

십년 내 도래할 미디어 생태 파괴의 우울하고 슬픈 전경이다. 환상의 비극이 아닌 (타국에서 이미 확인된) 비극의 현실이며, (지금까지의 추세에 비춰봤을 때) 현실화될 게 분명한 야만적 텔레비전의 가능성이다. 다시 정리하자. 종합편성채널 허가가 독립변수라면 수신료 인상은 종속변수일 따름이다. 전자가 불변 요소라면 후자는 변동 사안에 부과하며, 이미 사안의 변동이 일어났다. 따라서 정치/경제 권력동맹이 어떤 조건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관철시킬 본질적 사안으로 재빨리 동력을 움직여야 한다. 종편 문제가 한국 정치/민주의 미래, 사회/진보의 운명과 직결된 결정적인 사안임을 이론/담론적으로 부각시키며, 종편 문제를 한가롭게 여기는 시민/사회의 잘못된 여론을 제대로 환기하며, 종편 문제에 어떻게 효과 있게 개입할 것인지 조직적인 논의와 고민을 해 가야 할 것이다.

미디어행동과 야당을 중심으로 최근에 일정한 대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한참 늦다. 수신료 인상 저지에 결집된 요란한 조직, 대단한 구호에 비춰보면, 여전히 조직력과 에너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는 수신료 인상에 비해 몇 배나 중요한 종편 허가를 절대로 막아낼 수 없다. 조중동 종편 채널의 동시적인 허가는커녕, 이미 위험해진 공영방송과 이미 위협에 처한 미디어 공공성의 완전한 해체를 막지 못한다. 민주/정치/진보 폐쇄의 암울한 미래를. 일방적 선전/권력 체제의 오만한 득세를. 선정성과 상업성의 나르시시즘 천국, 스펙터클과 이데올로기의 환상적인 국가를. 결코 멀지 않은 미래의 불행, 절대 상상에 그치지 않을 섬뜩한 미래를 원치 않는다면, 미국/제국의 풍경을 한국/사회에서 반복 목격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움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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