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G20 정상회의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으로 상대적으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관심은 평소보다 좀 덜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요. 그래도 개막 후 우리 선수들의 메달 행진이 이어진다면 다시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아시안게임은 아시아 최대 스포츠 축제로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희망을 선사한 대회로 60년째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올림픽에서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한 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안게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고, 소위 빅3로 불리는 중국, 한국, 일본은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올림픽과는 '또 다른 격전'을 가졌습니다. 60년 동안 이어진 역사만큼이나 참 다양한 이야기들도 많은데요. 아시안게임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아시안게임 상식'을 이번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62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선수단
한국, 아시안게임 창설 주도국이었다?

아시안게임은 1947년 구루 두트 손디가 아시아 각국의 상호 친선과 우의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창해 1948년 영국 런던올림픽에서 아시아 13개국 단장들이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아시아 지역 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사전 협의를 요청받아 추진됐습니다. 이어 한국을 비롯해 타이완, 필리핀,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등 6개국 대표가 참석해 아시안게임 준비협의회를 열어 1949년 2월, 인도 뉴델리에서 아시아육상경기대회를 개최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전국야구대회로 시작된 우리나라 전국체전처럼 아시안게임이 원래는 육상대회로 시작될 뻔 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인도의 내부 사정으로 열리지 않았고, 다시 9개국 대표들이 모여 아시아경기연맹을 새롭게 창설해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중간 해에 종합 경기 대회를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대회는 당초 아시아육상대회를 열려 했던 인도 뉴델리에서 1951년에 처음 열기로 했습니다.

한국은 준비협의회에 참가해 아시안게임을 창설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전쟁으로 선수를 파견할 여건이 되지 못해 초대 대회에는 불참하는 아쉬움을 겪었습니다. 아시안게임 이전에는 극동아시아 선수권과 서아시아 대회가 열렸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시안게임이 이 대회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아시아 화합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한때 아시안게임 종합 우승을 할 뻔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4회 연속 종합 2위에 도전합니다. 가장 처음 2위에 오른 것은 지난 1966년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이었는데요. 1982년 뉴델리 대회까지 아시아 3-4위권을 유지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1994년 히로시마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한국이 우승을 차지할 뻔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요. 바로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1986년 서울 대회에 금메달 93개를 획득해 94개 금메달을 따낸 중국에 금메달 숫자에서 딱 1개 모자라 아쉽게 우승을 놓쳤습니다. 만약 이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면 한국 스포츠사에도 꽤 오래도록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을 텐데요. 당시 한국은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며 2년 뒤에 있을 서울올림픽 전망을 밝혔고, 실제로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에 올라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 성과를 냈습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거둔 최고 성적은 2002년 부산 대회로 당시 금메달 96개, 은메달 80개, 동메달 86개를 따낸 것이었습니다.

복싱 전 종목 석권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서울 대회에서 한국은 복싱에 걸린 12개 종목을 싹쓸이한 쾌거도 이뤄냈습니다. 당시 한국은 복싱 최강국으로서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실력을 자랑한 것으로 잘 알려졌는데요. 금메달이 걸린 12개 종목을 모두 가져오는 신화를 쓰면서 복싱 강국의 면모를 제대로 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 1998년 방콕 대회 때는 노골드의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아마추어 복싱이 전체적으로 침체기에 빠져있는 가운데서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명예 회복을 노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한국 아시안게임 최다 관왕-최다 메달은?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기록한 단일 대회 최다 관왕은 1986년 서울 대회 양궁 남자 종목에 출전한 양창훈이었습니다. 당시 양창훈은 남자 30, 50, 70m 등 개인전에 걸린 모든 금메달을 싹쓸이했을 뿐 아니라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전무후무한 4관왕 기록을 세웠습니다. 양창훈은 다음 대회였던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2관왕을 기록해 역대 아시안게임 최다 6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양창훈과 더불어 1986년 서울 대회부터 2006년 도하 대회까지 역시 금메달 6개를 목에 건 승마 서정균 선수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세운 통산 최대 메달 기록은 남자 사격 간판 박병택이 갖고 있습니다. 박병택은 1990년 대회부터 시작해 지난 2006년 도하 대회까지 금메달 4개, 은메달 8개, 동메달 5개를 목에 걸어 총 17개의 메달을 목에 건 '아시안게임 사나이'입니다. 이번 광저우 대회에도 출전해 통산 최다 메달 기록은 또 경신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단일 대회 최다 메달은 지난 2006년 도하 대회 수영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목에 건 '마린 보이' 박태환이 갖고 있습니다. 만약 박태환이 이번 대회에서 개인 종목(자유형 100, 200, 400, 1500m) 전 종목을 싹쓸이하면 양창훈, 서정균이 갖고 있는 통산 최다 금메달 기록을 갈아치우게 됩니다.

역도에서 한국 첫 3관왕 나왔다?

한편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2회 연속 3관왕에 도전하는데요. 지난 대회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대회 전체 MVP도 수상했던 박태환이 전무후무한 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세운 선수는 다름 아닌 역도에서 나왔는데요. 원신희가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라이트급 우승을 차지하며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역도 경기가 체급별로 합계 기록만을 놓고 금메달을 수여하는 종목이기에 도대체 어떻게 해서 3관왕이 나왔는지 의아하게 느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답은 당시 대회 규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역도선수권처럼 당시 대회에서 역도는 인상, 용상, 합계를 나뉘어 시상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란이 전통적으로 역도 강국이라 홈 이점을 활용해 많은 금메달을 차지하기 위해 규정을 이런 식으로 바꾼 걸로 알려졌는데요. 어쨌든 그 덕에 원신희는 첫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며, 한국 스포츠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웠습니다.

구기 종목에서 공동 금메달이 나왔다?

한편 구기 종목에서 공동 금메달이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답은 1970년과 1978년 방콕 대회 때였는데요. 당시 축구에서 승부차기 규정이 없어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공동 금메달을 주기로 한 규정이 적용됐습니다. 공교롭게 이 두 번의 공동 우승 모두 한국이 차지해 눈길을 끄는데요. 1970년 대회에서 한국은 버마와, 1978년 대회에서는 북한과 공동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안게임 유일한 전 대회 싹쓸이 종목은?

한국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종목 가운데 역대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는 종목이 있습니다. 바로 여자 핸드볼이 그 주인공입니다.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핸드볼에서 한국은 1990, 1994, 1998, 2002, 2006년 대회까지 5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단 한 번도 최강 자리를 내주지 않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남자 핸드볼도 사실은 1986년 대회부터 2002년 대회까지 5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2006년 대회에서 중동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땅을 치며 우승은커녕 메달권에도 진입하지 못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번 대회에 여자 핸드볼이 6회 연속 전 대회 우승의 위업을, 또 남자 핸드볼은 지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아쉬움, 편파 판정에 대한 한을 푸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초등학생 선수가 있다?

▲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선수단 결단식에서 박태환선수가 체스 대표선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번 아시안게임에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는 1960년생 승마 선수 김승환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어린 선수는 누구일까요. 바로 1999년생 체스 선수 김태경이 그 주인공입니다. 김태경은 지난 6월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 당당히 선발돼 최연소 국가대표의 영예를 안았는데요. 김태경을 비롯해 체스대표팀에는 4명의 초등학생 국가대표 선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결단식에서 수영 스타 박태환에게 다가가 사인을 받는 등 영락없는 순수한 초등학생의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됐던 체스 초등학생 선수들이었는데요. 이번 대회에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 하는 활약을 펼쳐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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